[한마당-이명희] 난파음악상
입력 2013-09-13 18:45
독일 낭만파 음악의 거장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는 올해 탄생 200년을 맞았어도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 작곡가다. 반유대주의적 시각과 정치성 때문이다. 바그너의 숭배자였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 선전에 그의 음악을 이용했다. 유대인을 학살하던 나치 가스실에서는 바그너 음악이 울려 퍼졌다.
2차대전 후 이스라엘에선 바그너 음악이 금지됐다. 하지만 ‘바그네리안(바그너 애호가)’들에게 이데올로기는 문제되지 않았다. 1981년 10월 인도 출신의 지휘자 주빈 메타는 예루살렘에서 관중의 항의성 퇴장과 야유에도 불구하고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했다.
아르헨티나 태생 유대인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도 2001년 예루살렘 축제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스라엘 의회가 사과를 요구하자 바렌보임은 “내가 바그너의 음악 연주를 잘하지 못했다면 사과하겠다”며 “바그너의 작품이 클래식 음악사에 끼친 영향력이 너무 막강해 저항할 수 없었다”고 했다. 독일 지휘자 카이 뢰리히는 “바그너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유대주의자였다. 그도 시대의 아들일 뿐”이라고 변호했다.
1967년 동백림 사건(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휘말렸던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곡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세월 금지곡이었다.
홍난파(1898∼1941)를 기리는 난파음악상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작곡가 류재준씨가 친일 음악인 등의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홍난파(본명 홍영후)는 ‘봉선화’ ‘고향의 봄’ ‘옛동산에 올라’ ‘고향생각’ 등 주옥같은 10여곡의 가곡과 ‘오빠생각’ ‘나뭇잎’ ‘퐁당퐁당’ 등 111곡의 동요를 작곡해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린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도산 안창호가 이끄는 흥사단에 가입해 활동하다 1937년 6월 일제가 지식인들을 잡아들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70여일 옥살이를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가 이 사건 이후 전향성명을 발표하고 친일문예단체에서 활동했다는 등의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렸다. 모진 고문과 죽음 앞에서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예술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을 역사의 편가르기 논쟁에서 놔주면 안 되는 것일까.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