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 전격 사퇴] 정권과 코드 안맞아…‘원세훈 처리’ 싸고 사이 틀어져

입력 2013-09-13 18:02 수정 2013-09-13 22:29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는 혼외아들 의혹과 관련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가 직접적인 계기였다. 하지만 검찰 수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감찰과 채 총장 낙마 사태의 이면 구도는 단순하지 않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감찰하라고 하는 게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다. 채 총장에 대한 정권 수뇌부의 뿌리 깊은 불신이 그 이면에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채 총장은 임명 당시부터 현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가 많았다.

◇‘원세훈 처리’가 핵심 이유?=채 총장과 여권 핵심이 틀어진 결정적 계기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처리 문제였다. 명확하게는 원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대목이다. 국정원장이 공조직을 동원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검찰의 결론은 야당의 장외투쟁과 촛불집회에 빌미와 동력을 제공했고,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겼다는 게 여권 핵심의 인식이었다.

‘공안통’ 황 장관과 ‘특수통’ 채 총장은 지난 5~6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에서 원 전 원장에 대한 법리 적용과 신병 처리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었다. 당시 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키로 결론을 냈고, 채 총장은 이를 그대로 황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황 장관은 ‘법률가로서 양심상 도저히 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재검토를 주문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장관의 ‘제동’은 사실상 여권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는 불만이 제기됐다. 법무부와 검찰은 결국 원 전 원장에 대해 ‘불구속 기소, 선거법·국정원법 위반 동시 적용’으로 절충하면서 일단 갈등을 봉합했다.

그러나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채 총장은 이명박 정부가 지명한 검찰총장”이라고 언급하는 등 ‘통제되지 않는’ 검찰 행보에 대해 여권 내부의 불편한 기색이 본격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채 총장 ‘교체론’도 고개를 들었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의 첫 공판에서 “국정원의 행태는 신종 매카시즘”이라고 몰아붙인 데 대해서도 정권 수뇌부가 극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혼외아들’ 논란으로 갈등 확산=이런 흐름 속에서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채 총장의 혼외아들 의혹을 보도했다. 채 총장은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들에 대해 굳건히 대처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검찰을 흔들려는 ‘세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청와대와 국정원 등 ‘채동욱호 검찰’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진영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는 이 때만해도 “본연의 직무 수행을 위해 끝까지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하고, “유전자 검사라도 받을 용의가 있다”며 항전(抗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12일에는 정식으로 정정보도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황 장관이 돌연 혼외아들 의혹 문제에 개입해 감찰을 지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황 장관은 ‘검찰 조직의 안정 도모’를 명분으로 들었다. 조상철 법무부 대변인은 “(진상 조사는) 장관께서 결정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이 있는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는 “그만 나가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 대통령이 지난 11일 해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이틀 만에 나온 조치였다. 채 총장은 혼외아들 첫 보도 이후 7일 만에 끝내 퇴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