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몸을 정화하는 금식

입력 2013-09-13 18:35 수정 2013-09-13 19:21

초대교회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을 금식할 정도로 금욕적인 분위기 속에 성장했다. 이런 배경 아래 태어난 수도원 운동은 좀 더 강하게 금식을 실천했다. 최초의 수도사인 안토니는 매일 해가 진 후 한 번 먹었다. 이틀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혹은 토요일과 주일에만 먹은 적도 많았다. 야곱, 모세, 사르마티스,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 수도사들은 40일 금식을 하기도 했다. 어느 무명의 노수도사는 20년 동안 이틀 혹은 나흘이나 닷새에 한 번씩 식사했다.

100년 실험 끝에 이른 합의점

하지만 지나친 금식으로 수도사들이 병들자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토니는 “금욕 수행으로 자기 몸을 망친 사람들은 분별력이 없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고 경고했다. 유명한 리코폴리스의 요한은 과도한 금식을 악령의 충동질로 비난했다. 지나친 금식을 반대했다면 적당한 금식은 무엇이었을까. 100년에 걸친 실험 끝에 드디어 합의점에 이르기 시작했다.

조셉이 푀멘에게 “금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푀멘은 “나는 날마다 음식을 먹되 배부르지 않을 정도로 소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셉이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사부님은 젊었을 때 이틀씩 금식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어떤 때는 사흘이나 나흘, 심지어는 한 주 내내 금식하기도 했습니다. 교부들께서는 이 모든 방법을 시험해 보셨는데 결국 날마다 적은 양의 음식을 먹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게 이 쉬운 길, 왕도를 남겨 주셨습니다.”

4세기 말에 작성된 ‘네 교부들의 규칙서’에는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 갈새(행 3:1)라는 말씀에 근거해 수도원에서 주일을 제외한 어떤 날에도 오후 3시 이전에는 식사하지 않도록 한다”고 규정했다.

4세기 말부터 매일 절제와 분별 있는 하루 한 끼 식사가 일반적인 관습이 됐다. 한 노수도사는 “하루 한 끼 식사하면 수도승이다. 하루 두 끼 식사하면 육적인 인간이다. 하루 세 끼 식사하면 짐승이다”고 말했다. 그러면 한 끼 양은 얼마나 됐을까. 이집트에서는 수도사들이 주식인 마른 빵 두 개를 소금과 함께 물에 담가 한 리브라(약 340g)를 먹었다. 채소와 과일도 곁들였다. 정량보다 적게 먹는 수도사들이 많았고, 부족하면 빵을 세 개, 혹은 여섯 개까지 먹는 수도사도 있었다. 이집트 농부 한 사람이 다섯 리브라, 즉 하루 평균 10개의 빵을 먹었다고 하니 수도사들은 분명 포만감이 들기 전에 숟가락을 놓았을 것이다.

하루 한 끼를 먹고 살면 야위고 초췌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막의 풍성한 나눔과 소통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었다. 손님이 찾아올 경우, 또 자신이 이웃 수도사를 방문하는 경우에는 금식을 중단하고 기름, 콩, 올리브 열매, 과일 등 음식의 질을 높여 융숭한 대접을 했다. 이런 방문이 일주일에 절반은 되었다고 하니 영양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또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음식을 가져오면 서로 나눠 먹기도 했다. 주일예배 후에는 여러 채소와 과일, 물고기, 포도주까지 나오는 공동식사 시간도 있었다. 수도원의 기본 원칙은 혼자 먹든 함께 먹든 반드시 포만감을 피하고 약간 배고플 정도로 먹는 것이었다.

왜 수도사들은 식욕을 억제하고 과식을 피했을까. 테오돌은 “음식을 부족하게 먹는 것은 수도사의 육신을 정화한다”고 말했다. 요한 클리마쿠스는 식욕에 굴복하고 위를 키우는 것은 음란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라고 경고했다.

반면에 금식은 육욕을 죽이고 나쁜 생각을 근절한다고 했다. 베들레헴의 수도원에서 라틴어성경을 번역했던 제롬은 하나님께서 자손 번식을 위해 인간에게 성욕을 주셨는데 쉽게 흘러넘치고 범죄하는 한 가지 이유는 과식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위장을 음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욕망의 가시덤불에 물을 주는 것이다. 몸이 뜨거운 청년들이 과식하면 더 뜨겁게 되어 폭발하는 활화산처럼 된다. 꽉 찬 위장은 정욕의 씨앗이다. 금식 없이는 순결을 절대 유지할 수 없다. 항상 적게 먹으면 먹고 난 후에도 방심하지 않고 깨어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온전한 몸을 보호하는 수단

금식과 성욕의 관계에 대한 수도사들의 관찰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1944∼45년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에서 32명의 남성에게 첫 12주간은 하루에 3492㎈, 그 뒤 24주간은 1570㎈를 먹게 하는 실험을 했다. 참여자들은 체중이 줄고, 우울, 냉담, 피곤함, 짜증이 심해졌고 성호르몬과 성욕도 줄어들었다. “금식 없이는 성욕을 절제하지 못한다. 거룩하고 온전한 몸을 보호하는 핵심 수단은 금식”이라고 외친 제롬에게 한 노수도사가 말한 ‘하루 세 끼를 먹는 짐승들’은 이제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김진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