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짧은 아이 탓 입맛잃은 부모들] 끼니마다 숟가락 들고 추격전… 밥투정 요녀석 어떡하지
입력 2013-09-14 04:08
김미연(34·여)씨는 끼니때마다 세 살 아들과 추격전을 벌이느라 진이 빠질 지경이다. 식탁에 앉기 싫어 엉덩이를 빼는 아들을 억지로 앉혀놓고 잠깐 반찬을 가지러 간 사이 아들은 어느새 거실로 방으로 달아난다. 어르고 달래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봐도 아들의 식습관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들이 밥 먹기를 싫어하거나 음식을 가려먹는 시기는 대개 이유기와 4세 전후 무렵이다. 이유기에는 이유식을 조리하는 방법이 잘못됐거나 먹이는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4세쯤에는 아이의 자아가 발달하면서 싫은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을 나타내면서 문제가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때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려 들면 오히려 올바른 식습관 형성을 방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김씨처럼 밥투정을 고치려고 아이를 달래거나 윽박지르며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양혜란(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3일 “밥을 먹기 싫어하는 등 아이의 섭식문제는 대부분 부모에게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아이의 섭식문제를 크게 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심장·폐질환 등 아이가 병을 갖고 있어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경우인 ‘건강이상형’을 제외하고는 섭식문제의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부모가 편식을 하면 아이들도 편식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부모를 역할 모델로 생각하고 배우기 때문이다. 편식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도 편향된 식단을 제공한다. 부모 중 한 명이 비만인 가정은 50% 확률로 아이가 비만이 된다고 한다. 부모가 둘 다 비만일 경우 이 확률은 70∼80%로 높아진다. 비만을 결정하는 유전인자도 일부 작용하지만 습관이 정말 무서운 것이라는 지적이다. 부모가 야식·폭식·군것질을 좋아하면 아이들도 부모를 따라가게 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식욕부진형’이다. 밥 먹기를 싫어하고 주의가 산만해 식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엄마가 밥숟갈을 들고 쫓아다니면서 떠먹어야 마지못해 한술 먹는 아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급선무는 밥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게 만드는 일이다. “한 숟가락 먹으면 사탕 줄게”라는 식의 협상은 금물이다. 아이가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밥을 주고 한 숟가락 먹을 때마다 잘 먹었다고 칭찬해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면서 밥을 먹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밥을 먹지 않는다고 감정을 실어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치고 화를 내면 아이는 먹는 것을 나쁜 경험으로 인식하게 되고 거부반응이 강해진다.
입맛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편식을 하는 아이들는 ‘감각예민형’으로 분류된다. 이런 아이들은 대체로 모든 신체 부분의 감각이 예민한 사례가 많다고 한다. 채소의 질감을 싫어하거나 쓴맛을 싫어해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좋아하는 메뉴에 잘게 자른 채소를 넣어주는 식으로 서서히 적응을 유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는 먹을 만큼 잘 먹고 있는데 부모의 기대치가 높아 계속 먹이려고 하는 경우엔 ‘부모오인형’으로 분류된다.
엄마가 산후우울증에 걸려 아이와 유대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거나 아이가 음식을 섭취하는 것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등 섭식문제를 일으키면 ‘상호작용부족형’에 해당된다. 아이가 목감기나 수족구병에 걸려 아픈데 억지로 힘들게 먹었던 기억을 갖거나 음식을 먹다가 목에 걸려 고역을 치른 경험이 ‘외상후섭취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양 교수는 “무엇보다 아이가 식사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식사 시간은 30분 이내로 제한하고 아이가 식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TV·스마트폰·책·장난감 등은 치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