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정의 비극… 안락사 논란 재점화
입력 2013-09-12 22:17
말기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던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다른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한 20대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포천경찰서는 12일 뇌종양 말기인 아버지(56)를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이모(27·회사원)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난 8일 오후 3시30분쯤 포천시 일동면 집에서 아버지가 괴롭다며 죽여 달라고 요구하자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이날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기로 어머니(55), 큰누나(29)와 합의하고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장례를 마친 뒤 괴로워하다 지난 11일 오후 이 문제 등으로 큰누나와 다툰 뒤 밖으로 나갔다. 이씨는 같은 날 오후 10시30분쯤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사실이 괴로워 나도 죽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작은누나에게 보냈다. 작은누나는 걱정이 돼 곧바로 112에 신고했고, 경찰은 가까운 저수지 근처에 있는 이씨를 발견해 검거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고통에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숨진 아버지는 지난해 12월 뇌종양 말기로 ‘길어야 8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후 집에서 약물치료를 하며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고 수차례 함께 사는 큰누나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큰누나는 직접 실행하지 못하고 이씨를 세 차례 설득해 범행하게 했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화장함에 따라 이 사건은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됐다. 경찰은 이씨 어머니와 큰누나는 불구속 입건할 방침이다.
한편 가족들이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랬다’고 주장하고 있어 법정에서 안락사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는 강제로 환자의 목숨을 끊는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식물인간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시도된 바 있다.
2009년 세브란스병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연명치료 중단 판결을 받은 김모(77)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국내 첫 존엄사가 시행됐다. 당시 김 할머니는 연명치료를 중단한 지 201일 만에 숨을 거뒀다.
포천=정수익 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