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가위’… 꽁꽁 닫힌 지갑에 명절 특수 실종
입력 2013-09-12 18:18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는 직장인 이규태(34)씨는 부모님 선물로 5만원짜리 운동화 두 켤레를 샀다. 지난해 추석에는 현금 30만원을 드렸지만 올해는 도저히 여력이 되지 않아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부모님이 평소 희망했던 물품을 구입한 것이다.
경기 침체로 회사 상여금은 삭감된 반면 아이들의 옷이나 장난감 가격, 가족 생활비 등은 가파르게 올랐다. 여기에 올 초 이사하면서 받은 전세보증금 대출이자까지 더해지면서 가계 살림이 1년 새 몰라보게 팍팍해졌다.
이씨는 “장남이다 보니 평소 부모님 명절 용돈은 꼭 챙겼는데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며 “내년 설에는 ‘만회’할 수 있도록 경기가 좀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우울한 추석을 맞는 가정이 늘고 있다. 현금 대신 주로 선물하던 신용카드사의 ‘기프트카드(무기명 선불카드)’ 판매량 급감이 이를 반영한다.
신한카드는 올 추석을 1주일 앞두고 최근 2주간 기프트카드 판매액이 5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판매액(58억)에 비해 10.3% 감소했다고 12일 밝혔다. 현대카드 역시 같은 기간 기프트카드 판매액이 19%나 감소했다. 카드 회원 가운데 백화점 회원이 많은 롯데카드와 법인 영업력이 강한 삼성카드 역시 판매액 자체는 지난해와 비슷했지만 증가율은 전년에 비해 악화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프트카드를 포함한 국내 선불카드 결제액 역시 지난 2월 1350억원에서 지난 6월 말에는 926억원으로 꾸준히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선불카드의 일종인 기프트카드는 음식점이나 의류 매장, 주유소, 골프장 등 신용카드로 결제 가능한 가맹점에서 잔액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자체 상품권을 발행하는 업소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용이 가능하다.
통상 생일이나 명절 등에 선물, 경품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경기의 부침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용도가 사실상 현금과 같은 만큼 명절을 맞은 가계의 자금 사정이 악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의 경우 전년에 비해 기프트카드 판매액이 10% 정도 증가했었다”며 “올해 판매 부진은 경기 침체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등에서는 고가의 선물보다 3만원 안팎의 저가 선물세트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홈플러스의 인터넷 쇼핑몰 분석 결과 이달 20일간 3만원 미만 선물세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311% 증가했다. 품목도 저렴한 위생용품 및 식용유 세트가 수위를 차지했다.
소셜커머스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추석선물 ‘최저가 보장제’를 도입하며 저가상품 고객 유인에 나서고 있다. 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의 경우 저가상품 매출이 지난해 대비 43.7% 늘었다. 인기상품 역시 지난해 한우나 건강보조식품 등에서 올해는 양말·타월세트 등 1만원 미만 초저가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