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살인’ 무죄 여전히 남는 의문… 대법 “강제 질식 확신할 직접 증거 없다

입력 2013-09-12 18:09


‘낙지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피해자가 질식사한 것은 맞지만 남자친구가 죽인 것인지, 정말로 낙지가 기도에 걸려 숨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다. 피해자의 사망원인은 여전히 미궁으로 남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2일 여자친구(당시 21세)를 질식사시킨 뒤 낙지를 먹다 사망한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모(32)씨의 상고심에서 살인 혐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살인혐의에 대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줄 정도의 증명에 이르지 못했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살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차량절도 혐의 등은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됐다.

사건의 쟁점은 피해자가 질식사한 이유다. 검찰은 김씨가 2010년 4월 19일 인천 주안동 한 모텔에서 여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뒤 만취한 여자친구를 질식시켰다고 주장했다. 직접 증거는 없었다. 검찰은 정황증거들을 내세웠다. 피해자가 평온한 표정으로 잠을 자듯 반듯하게 누워 있었던 점, 술자리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점, 낙지를 먹다 질식사했는데, 몸부림 흔적도 없었다는 점 등이다. 검찰은 김씨가 타월과 같은 부드러운 천을 이용해 코와 입을 막았다고 판단했다. 만취한 피해자는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고, 김씨의 완력에 미약한 저항도 어려웠다는 추정이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김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김씨 측은 검찰의 논리를 반박했다. 김씨가 코·입을 막아 질식시켰다면 피해자의 얼굴 등에 상처 등의 흔적이 남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김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강제로 숨이 막혀 질식 사망했다는 점에 관한 명백한 증명이 없고 피고인의 행위와 무관하게 낙지에 의해 질식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검사가 제시한 간접증거만으로 살인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결국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피해자의 질식사 원인은 미궁으로 남게 됐다. 또한 피해자가 고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이유와 김씨가 신용불량자였던 점, 김씨가 사건 당일 모텔 종업원을 통해 신고를 한 점, 피해자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김씨가 다른 여성과의 만남을 계속했던 점 등에 대한 의혹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항소심 선고를 내리며 사건 당시 경찰이나 유족 누구도 타살을 의심하지 않았던 점을 아쉬워했다. 피해자는 모텔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후 16일 만에 숨졌지만 사고사로 처리돼 이틀 만에 부검 없이 화장됐다. 사인의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낼 수 없었던 이유다. 피해자의 아버지 윤모(50)씨는 “살인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줘야 유죄가 되는 것이냐”며 “이제 법을 못 믿겠다”고 재판결과에 울분을 토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