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태산, 믿지못할 日… 방사능 수산물에 백반증 화장품까지 ‘쉬쉬’
입력 2013-09-13 01:53
서울에 사는 30대 주부 이혜정씨는 12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일본 가네보 화장품사(社)가 자사 제품에서 피부에 흰 얼룩이 생기는 백반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도 무려 10개월 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접하고 혀를 찼다. 지난 7월 리콜 조치가 발표됐을 때는 두 달간 피해 사실을 숨긴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3자 조사단의 조사 결과 지난해 9월 화장품과 백반증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공식 확인하고도 쉬쉬해왔다고 교도통신이 이날 발표한 것이다. 열 달 가까이 아무것도 모른 채 가네보 미백크림을 써왔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화장품뿐인가. 고등어니 명태니 일본산(産) 수산물에도 화가 치민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일본은 자체 방사능 검사를 강화해왔고 우리 정부도 이를 믿고 후쿠시마 인근 8개현의 50개 수산물만 수입을 금지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 일본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수산물을 우리가 재차 검사해보니 64건 중 62건(96.9%)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보기 좋게 일본 정부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중국, 대만은 2011년 3월 원전사고 직후부터 수산물뿐 아니라 농산물까지 수입을 전면 금지해왔는데 우리는 일본의 방사능 검역 기준에만 의존해오다 사단이 난 것이다. 원전사고 관련 자국뿐 아니라 주변국의 우려가 큰데도 자체적으로 강도 높은 방사능 검사를 안 한 것이다.
일본 정부의 안이한 대응은 이뿐이 아니다. 방사능 오염수 바다 유출 문제만 해도 지난 2년반 동안 “통제 가능한 상황”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지난달 내내 수백 t의 오염수 유출이 신문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올림픽 유치전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방사능 오염수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했지만 도쿄전력이 이를 정면 반박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급기야 도쿄전력은 이날 후쿠시마 원전 근처 지하수에서 법정 허용 한도를 초과하는 고농도의 트리튬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방사능 오염수가 지하수까지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오염수가 원전 전용 항만 바깥의 공해로 유출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도쿄전력은 12일 원전 단지에서 원전 항만 바깥 바다로 직접 연결된 배수구에서 베타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오염수 영향은 후쿠시마 제1원전의 항만 내 0.3㎢ 범위 내에서 완전 차단되고 있다”는 발언과 배치되는 것이다.
이씨는 이제 일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난감해졌다. 거짓말에 눈속임까지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의 나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역사 문제에서 우리나라와 마찰은 빚어도 일본산 제품, 먹을거리는 믿을만하다는 믿음이 여지없이 깨졌다. 이씨는 “일본산에 대한 불신이 나 같은 주부들 사이에 강해지고 있다”며 “일본 물건이라면 최고로 치고 문제가 생겨도 안심하던 풍토도 옛일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