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인권위해 헌신한 참 기독인이었다”… 故 이윤구 박사 추모예배

입력 2013-09-12 17:40 수정 2013-09-12 21:24


대한적십자사, 월드비전, 사회복지사협회, 서울평화센터, 한동대, 인제대, 한신대, 서울YMCA… 34개의 시민사회복지 관련 단체와 대학의 인사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이윤구 박사,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12일 오후 서울 종로 YMCA대강당에서 함께 추모예배를 드렸다.

이 박사는 1961년 기독교세계봉사회 총무를 시작으로 유엔아동기금, 한국월드비전, 흥사단 등에서 평생 지구촌의 가난한 나라를 돕고 죽어가는 어린이를 살리는 일에 헌신한 인물이다. 지난 달 30일 미국 하와이의 딸을 만나러 갔다 급성폐렴으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향년 84세.

“나는 슈바이처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국신학대 동기인 이증구 분당 서울대병원 원목실장은 이 박사가 학창시절 이같은 소원을 말했다고 했다. 고인은 무엇보다 1991년 한국월드비전 제5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40여년 받기만 한 나라에서 이제는 그 빚을 갚는 나라가 돼야 한다”며 한국에서 기적과 같은 모금운동을 일으킨 인물로 기억된다. 창고에 쌓여 있던 ‘사랑의 빵’ 저금통을 꺼내 전국에 나눠주었을 때 가장 먼저 호응한 곳은 교회였다. 크고 작은 교회들이 경쟁하듯 사랑의 빵을 채웠다. 학교와 공장, 사무실, 군부대로 확산되면서 10개월만에 23만개가 나눠졌고 3억7000만원이 모아졌다. 이 박사는 “왕거지, 각설이 노릇을 하며 밤낮으로 신이 나서 뛰어 다녔다”고 회고록 ‘사랑의 빵을 들고 땅 끝까지’에서 밝혔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NGO의 홍보대사를 세운 것도 이 박사였다. 이 박사는 NGO 1호 홍보대사인 연기자 김혜자씨와 함께 에티오피아를 찾았다. 현지 어린이들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우느라 밥을 삼키지 못하는 김씨를 다독거리며 1대1 결연사업과 해외 모금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켰다.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월드비전을 통해 북한 지원사업도 시작했다. 적십자 총재였던 2004년에는 북한의 용천역 폭발 사고 현장을 방문한 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했다. 인제대 총장 시절 대학생들에게 “커피 한잔 돈이면 북한 어린이가 한달을 살수있다”고 외쳤다.

추모예배 사회 이준우 강남대 교목실장은 “지난 봄 사회복지 분야의 후배들에게 ‘십자가 정신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라. 기술자가 되지 말고 전문가가 되어라’고 깨우쳐 주신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의 후임으로 적십자 총재를 맡은 한완상 전 부총리는 추모예배에서 “고인은 낭만적 유목민이었다”며 “복지와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그의 일생을 꿰뚫는 가치는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했다. “자유로우면서 경건하되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노년에도 일을 쉬지 않았던 고인은 돕고 싶은 정열 때문에 스스로 고통 받았다”고 회고한 한 전 총리는 “하늘나라에 상이 있다면 정열상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자녀들이 거주하는 하와이에 묻혔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