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신학자’ 獨 위르겐 몰트만 교수에 듣는다
입력 2013-09-12 17:33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콘퍼런스
‘희망의 신학자’로 알려진 위르겐 몰트만(87) 독일 튀빙겐대 석좌교수는 “캄캄한 밤중에도 희망의 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면서 한국사회를 향해 ‘희망을 향한 담대한 용기’를 가지라고 주문했다. 오는 10월 1일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및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개교 8주년 기념 콘퍼런스 주강사로 내한할 몰트만 박사는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금 세계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으로 인한 지구환경 파괴,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유혈 분쟁 같은 극심한 정치적 긴장으로 혼돈 속에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희망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밝혔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제시
몰트만 박사는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이 자란다’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말을 인용하면서 “인간의 권력이 더해질수록 미래는 위험해지며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1945년 이후 세계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고 작금의 현실을 진단했다. 그는 “진정한 희망은 믿음·소망·사랑의 덕 가운데 사는 동안 가능하다”며 “세 덕목으로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믿으며 이웃을 사랑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에 따르면 희망의 삶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13:13)에 기록한 것처럼 믿음·소망·사랑의 덕 가운데 살 동안 가능하다. 하나님을 믿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희망의 토대가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무신론과 인본주의는 인류의 삶을 뒤틀리게 할 뿐”이라면서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원한 가치를 찾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우리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라면서 “결국 믿음이 희망의 전제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먼저 믿은 크리스천들, 특히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개인적·사회적 절망 속에 있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독일교회 함께 가야
몰트만 박사는 최근 국민일보의 ‘독일 시리즈’ 기획과 관련해서도 관심을 표시했다. 그는 독일교회는 교회음악이나 장애인·노약자들을 위한 디아코니아(봉사) 활동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또 대부분 국립대학에 신학부가 설치돼 있어 학문적 관점에서 신학이 연구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1919년까지 독일 개신교회는 국가교회였기 때문에 해외 선교활동을 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했다. 이에 반해 아시아 교회들은 유럽의 기독교 제국주의의 영향 밖에서 태생된 ‘비 콘스탄티스’ 교회들이기에 ‘선교하는 교회’로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한국과 독일 양국의 신자들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도 했다. 독일에는 나치 시대의 고백교회가 있고, 한국엔 일제 강점기 시절의 고난받던 교회가 있었다는 게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경험으로 한국교회와 독일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서로 배워야 할 점으로 한국교회는 디아코니아를, 독일교회는 선교를 꼽았다.
전범국 일본과는 화해와 용서
몰트만 박사는 최근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지만 따끔한 일침이 아니라 교회와 신자를 향한 일성(一聲)을 던졌다. 화해였다. 그는 “나의 바람은 한국과 중국이 이전의 원수이자 침략자였던 일본과 서로에 대한 고통을 인정하면서 화해하는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화해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가 이처럼 화해를 강조한 것은 한 차원 높은 교회의 사명을 강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교회 관계자들은 일본 우익이 목소리를 낸다고 교회마저 일희일비하고 분노하는 데서 끝난다면 세속 사회와 아무런 차별이 없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몰트만 박사의 희망 신학이 초월적 하나님 존재를 역설하며 당시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는 신학 흐름을 반전시켰듯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세상의 기준을 뛰어넘는 하나님나라 윤리로 전범국 일본과의 문제를 풀자는 의미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한·일 기독교인들이 먼저 나서서 그런 염원을 화해로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이끌었고 개신교인들은 폴란드와 독일의 화해를 주도했다”며 “정치 역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증거와 기적’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WCC는 정의와 평화 촉구해야
10월 말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세계기독교협의회(WCC) 총회는 그런 맥락에서 중요한 모임이 된다. 몰트만 박사는 “WCC 총회에서는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이 생명의 하나님을 따르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며 “이러한 가치에 대해 모든 교회가 함께하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연합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산 총회를 통해 세계 기독교 안에서 사회·정치적, 생태적 정의의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7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후 수차례 방한했던 몰트만 박사는 한국인들의 고난과 희망에 깊이 공감하는 몇 안 되는 서양 지식인이기도 하다. 한국인과의 교류 폭도 다양해 군사독재 시절 박해당했던 목회자부터 일반 신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번 콘퍼런스에서 ‘희망의 하나님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강연한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에게 한국사회와 교회를 향한 한 마디를 부탁했다. “오라! 함께 희망의 축제를 벌이자.” 평생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 땅을 바라본 노신학자의 답이었다.
누구인가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현대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2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으로 참전했다가 연합군에 붙잡혀 3년간 포로생활을 경험했다. 그때 수용소에서 미군 군목이 던져준 신약성경과 시편을 읽으며 절망이 지배하던 포로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 정의의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며 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1948년 괴팅엔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52년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3부작으로 꼽히는 ‘희망의 신학’(1964),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1975)가 있으며 이후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 ‘희망의 윤리’ 등을 펴냈다.
몰트만 박사는 ‘희망의 신학’으로 절망에 빠진 세계를 구출한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유행하던 ‘사신(死神) 신학’과 세속주의 신학 등 초월적 존재 자체가 무시되던 사상적 흐름 속에 종말론적 기독교 신학을 바탕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등이 생성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몰트만 박사에 따르면 신학자에게는 공익을 위한 과제가 있다. 단순히 학교와 교회 안에만 머무르는 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편적 정의와 평화를 세계 시민들에게 선포하고 이해시킬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신학을 ‘정치 신학’ 혹은 ‘공공 신학’으로 불렀다. 그는 “한국 신학자들은 유럽이나 미국의 신학을 수입하고 소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한국만의 신학을 도출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