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 병과 싸우는 호킹 첫 자서전 특수 장비 이용 1분에 3단어씩 집필

입력 2013-09-12 18:35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스티븐 윌리엄 호킹/까치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윌리엄 호킹(71)의 첫 자서전으로, 저자는 ‘나, 스티븐 호킹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갈릴레오가 죽은 지 꼭 300년 후인 1942년 1월 8일에 태어났다. 특별하다면 특별하겠지만, 내 추측에 그날 태어난 아기가 나 말고도 20만 명쯤은 될 것이다. 그 아기들 중에서 누군가가 자라서 천문학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13쪽)

그의 말처럼 1942년 1월 8일 태어난 아기는 호킹 외에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호킹 같은 업적을 남긴 인물은, 호킹처럼 인류에게 희망의 증거가 돼 준 사람은 없을 듯하다.

알려졌다시피 호킹은 루게릭 병과 싸우며 누구도 이루지 못한 학문적 성과를 거둔 학자다. 지독한 병마는 그의 몸을 뒤틀어놨지만 그의 삶을 어그러뜨리진 못했다.

자서전은 컴퓨터와 음성 합성기 같은 특수 장비를 이용해 1분에 최대 3단어를 말할 수 있는 호킹이 직접 쓴 것이다. ‘나의 간결한 역사(My Brief History)’라는 원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간결한’ 분량(192쪽)이지만 그 어떤 자서전보다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중등학교 시절 호킹은 학급 석차가 20등 정도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학(영국 옥스퍼드대)에 진학해서도 3년간 공부한 시간이 하루 한 시간 꼴인 1000시간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하지만 병색이 짙어지면서 그의 삶은 외려 능동적인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른 죽음의 가능성에 직면한 사람은 삶이 소중함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음을 깨닫기 마련”(51쪽)이기 때문이다.

호킹은 우주의 원리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진했다.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열역학 등 물리학의 뼈대를 이루는 이론을 모아 블랙홀과 빅뱅 연구 등에 있어 큰 족적을 남겼다. 병 때문에 수차례 겪었던 생사의 고비, 두 차례 이혼이 남긴 아픔도 그의 길을 막진 못했다.

자서전 내용 중 호킹이 물리학 난제들을 설명하는 대목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호킹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많은 사진과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독서의 기쁨은 충분하다. 호킹은 “나는 우주의 깊은 속을 알고 싶었다. 내가 조금은 성공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나는 알고 싶은 것이 많다”(42쪽)고 말한다. 전대호 옮김.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