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장삿속 상아탑

입력 2013-09-12 17:51

연세대의 상징인 ‘백양로’가 지하주차장 조성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교수들이 릴레이 천막농성에 들어가면서 ‘과도한 캠퍼스 상업화’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캠퍼스 리모델링 열풍은 좁은 공간에 건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고, 부족한 편의시설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수년전부터 대학가를 휩쓸고 있다. 그러나 학교법인이 토건사업을 통해 갈수록 기업을 닮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2015년 5월까지 900억원을 들여 차도와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녹지와 광장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평교수 230여명으로 구성된 ‘연세 캠퍼스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은 “부족하지도 않은 주차장을 짓기 위해 소중한 관계의 기억과 문화·생태적 가치를 지닌 공간을 없애는 것은 무모하고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캠퍼스 리모델링은 2000년대 초 재벌 명칭이 붙은 건물들이 대학교내 빈 공간을 잠식한 이후 지방분교와 지하 캠퍼스 건설로 구체화됐다. 2003년 고려대를 필두로 2008년에는 이화여대와 서강대가 지하캠퍼스를 지어 카페, 레스토랑, 영화관 등 상업시설을 유치했다. 대형 유통점인 홈플러스, 벽제갈비 등 고급음식 체인점,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등도 대학교에 들어왔다.

대학교 안에 상업시설이 늘어나면서 학생자치 공간은 축소됐다. 값싼 메뉴를 제공하는 구내식당이 위축되고, 밥값이 상승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적자에 시달리는 구내식당 식권값이 계속 오르자 최근 외부업체 입점 여부 심의과정에 학생회의 참여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학교법인이 수익용 기본재산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물론 법인의 의사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대학교내 대기업 체인점은 대학을 둘러싼 동네 상권을 위축시키고, 비싼 음식점을 이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더구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내 30개 대학에 입점한 외부업체 가운데 39%가 대기업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대학교마저 얼마 안 되는 임대수익에 눈이 멀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폐해를 부각시켜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