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베트남 原戰 수주하려면

입력 2013-09-12 17:35


“원전 수주에 악재인 비리 근절하고 저렴한 국제금융비용 조달할 체제 갖춰야”

한국과 터키가 원자력발전소 사업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은 2010년 6월의 일이었다. 민간 차원에서 진행된 원전 수주 협의가 양국 정부의 MOU를 통해 공인된 셈이다. 이명박정부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원전 수주에 이은 일대 쾌거라고 홍보했다.

이명박정부는 그해 초 거창한 청사진도 내놓았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신규로 발주할 원전을 430기로 전망했다. 사업비가 1200조원에 달할 정도로 원전 시장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이명박정부는 80기를 수주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 발주 물량의 20% 가까이를 차지해 원전 3대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포부였다. 경쟁국들을 제치고 터키 정부와 MOU까지 체결했으니 장밋빛 전망만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3년 후 터키 원전 사업권을 따낸 것은 일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쯔엉 떤 상 국가주석은 지난 9일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의 원전 개발 경험과 기술을 공유하는 게 베트남 원전산업 육성에 기여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베트남에서의 원전 개발을 위해 양국이 지속적으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상 국가주석은 “한국의 원전 기술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은 “원자력과 같이 국회 승인을 필요로 하는 사항에 대해 행정부 독단으로 할 수 없어 확실한 답변을 주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는 게 베트남 측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1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베트남 3차 원전사업 2기(5·6호기)를 우리 업체가 수주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고, 상 국가주석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고무적이다. 한국은 지난 6월부터 원전 수주를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벌이고 있다. 베트남의 1차 원전 사업은 러시아, 2차는 일본이 수주했고, 한국은 3차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베트남은 2030년까지 총 10기의 원전을 도입할 계획이어서 3차 사업에 대한 한국의 수주 여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 정부와 한국전력은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원전 입찰 경쟁전에도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보여준 베트남 세일즈 외교는 국가 정상의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동남아 동유럽 터키 등을 방문하면서 원전 수주를 포함해 대규모 사업권을 따낸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는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악취를 풍기는 원전 비리는 수주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검찰이 10일 발표한 원전 비리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보면 원전 비리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검찰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종찬 한국전력 해외부문 부사장 등 무려 97명을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했다. 원전 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의혹으로 시작된 수사가 금품 로비와 각종 비리로 확대된 것이다. 앞으로 수사를 통해 어떤 비리가 불거질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세계무대에서 벌어지는 모든 수주전에서 남의 약점은 나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원전 비리 실태가 경쟁국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는 한국이 UAE 원전을 수주한 뒤 ‘팀 프랑스’라는 단일체제로 전열을 정비하고 한국형 원전의 약점에 대해 끊임없이 네거티브 공세를 폈다. 최근 핀란드 원전 수주전에서도 경쟁국들이 우리의 원전 비리를 집중 부각시키며 재를 뿌렸다고 한다. 이번에 원전 비리의 근원을 도려내고, 가담자는 패가망신한다는 경각심을 심어줘야 한다.

터키 원전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가 실패한 사례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개발도상국들은 원전 수주국이 비용을 조달해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투자비를 회수하는 터키 방식을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중국이나 초저금리로 공략할 일본에 대비해야 한다. 국제무대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할 수 있는 투자은행을 키우고, 필요하다면 정부도 나서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