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혜훈 (10) 영국 유학생들 “이혜훈에게 잡혀가면 망한다”
입력 2013-09-12 18:27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성경공부 모임을 만들기 위해 기초조사부터 했다. 레스터에 한국인은 영국인과 국제결혼한 주부 2명, 레스터대학에 유학 온 학생 및 가족 12명이 전부였다.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부정적인 말을 뱉지 말자’ 하며 자기 암시를 걸었다. 한 사람씩 만나보니 교회에 출석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3명,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1명뿐이었다. 믿음이 초기단계일 때는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 아니면 영국교회 예배로 은혜를 받기는 힘들다. 한국말로 주의 말씀을 받는 한국교회가 필요했다.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는 가까운 한국교회는 케임브리지 한인교회였다. 우선 믿음이 있는 찬희 자매와 기도 모임을 시작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케임브리지 한인교회까지 데려가 예배를 드렸다.
하지만 두 아이를 카시트에 앉혀서 뒷자리에 태우고 나면 남는 자리는 조수석 하나뿐이어서 매주 한 사람밖에 데려갈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왕복 4시간에 예배 드리고 친교까지 하면 6∼7시간 걸리는데 한번 따라온 사람들이 ‘이혜훈에게 잡혀가면 망한다’고 소문내는 것이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였다. 어느 날 레스터에는 한국음식점이나 한국식품점이 한 곳도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영국음식은 맛없기로 유명해서 내가 식사하는 교수식당 음식도 형편없었다. 인도계 여교수랑 영국 음식에 대해 흉을 보다가 ‘교수식당이 이 정도면 학생식당은 더 형편없겠지, 한국 음식 먹으러 오라 하면 오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국식품점이 있는 런던까지 두 돌과 세 돌 아이 둘을 차에 싣고 왕복 일곱 시간을 운전해서 장을 봐 와야 한국음식을 만들 수 있었지만 괜찮았다. 문제는 내 요리 실력이었다. 미국에서는 한국식당, 한국마켓이 잘 돼 있으니까 좋은 곳을 골라 잘 사와서 예쁘게 내 놓기만 하면 잘 먹었다. 영국에선 김치부터 일일이 내가 다 담가야 하는데 솔직히 한 번도 담가본 적이 없었다. 음식을 만들면서 한국의 어머니께 일일이 물어보고 하나님께 ‘이 사람들이 다시 오려면 음식이 맛있어야 합니다. 이 음식에 축복해 주세요’라고 수없이 기도했다.
처음엔 성경공부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한국 사람들끼리 밥이나 먹자’고 초대해서 ‘내가 기독교인이라 음식 먹으려면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간단히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다. 모임이 정례화되면서 예배의 성격을 강화해 갔는데 나중엔 키보드까지 사서 반주도 하고 나름 가정예배의 형식을 갖췄다. 그런데 문제는 말씀을 전할 주의 종이 없다는 것이었다. 주의 말씀을 전할 자격이 없는 내가 예배 인도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이 양떼를 목양할 주의 종을 보내달라고 찬희 자매와 둘이서만 학교에서 따로 만나 기도모임을 계속했다.
하루는 찬희 자매가 도서관에서 복사를 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한국인처럼 보이는 중년남자들이 “아니 동전을 어디로 넣으라는 거야”라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세요”라고 인사하고는 나와 연결시켜줬는데 모두 네 분이었다. 성경공부모임에 나오게 하려고 “어떻게 레스터에 오시게 됐냐. 가족은 같이 오셨냐. 어디쯤 사시냐. 우리가 모시러 갈까” 등등 호구조사를 시작했는데 뜻밖의 답이 돌아 왔다. 네 분 모두 레스터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노팅엄대학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유학 온 목사님들이셨다. 분명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다. 우리를 인도할 주의 종을 보내달라는 기도를 들으셨다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