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지만 강인한 아! 아버지 체취 다시 떠올립니다
입력 2013-09-12 17:22 수정 2013-09-12 17:28
다가오는 추석… 이 시대 아버지 주제 책 2권
이제 곧 추석입니다. 다른 때보다 연휴 기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막상 시간 내서 책 읽기가 쉽진 않을 것입니다. 딱딱한 책 어려운 책 대신, 손쉽게 펼쳐 읽고 잠시나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신간 2권을 소개합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외로운 이름, 아버지에 대한 책입니다. 귀향길에 오르거나 또는 올 추석엔 사정이 있어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더라도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이름,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정신세계사)=이 책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들려주신 이야기를 가감 없이 쓰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해 “이 책이 진실하게 완성되는 길은 나는 없어지고 아버지 말씀만 남아야 한다”는 글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들려주신 이야기에만 집중하겠다며 책에 자기소개 한 줄 적지 않았습니다. 대신 1900년대 초반 태어나 소학교밖에 못 나온 농부 아버지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90여 년간 살면서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하나씩 기억해 내는데 힘을 쏟습니다.
이북에 살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찬송 소리를 들으며 맨손으로 피란 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노인들과 같이 가다 죽느니 너희들만 이남에 내려갔다 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테니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유언이 됐다고 하셨습니다.
피란살이 내려와 몸에 밴 검소함과 소박함으로 자식들을 키워 오신 날들의 기록이 뒤따릅니다. 사과 과수원을 하던 아버지는 늘 썩은 사과만 드셨고, 과수원에선 반찬 하나 없이 사과나무 장작불에 된장 풀어 멀건 국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아버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딸의 이름을 부르시고, “일이 바쁠 텐데, 날래 가거라…”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라”고 하시면서도 굳게 잡은 손을 선뜻 놓지 못하셨습니다.
사실 저자 박영신 인하대 교수는 한국인의 부모 자녀 관계를 연구해온 교육학자입니다. 그는 수십 년의 연구보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 큰 감동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딸에게 삶의 지혜를 전하려고 절박하게 발버둥치셨는데, 철없는 딸은 늘 졸면서 듣다가 그것도 모자라 쿨쿨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이야기는, 자라고 들려주는 자장가인 줄 알았다”며 가슴을 칩니다.
◇‘아빠에게 말을 걸다’(my)=시인에서 사진작가로 활동 반경을 넓힌 신현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혼자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아빠를 바라보며, 아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찾습니다.
자신의 딸과 아빠를 모시고 3대가 함께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던 날, 아빠는 밤 10시 출발인데도 오후 4시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리시며 마냥 즐거워하십니다. 그 모습에서 자식에게 민폐 끼칠까봐 여행 안 가도 된다고 하는 부모의 말은 속마음과는 다름을 깨닫습니다. 저자는 “여행은 짧아도 그 향기가 평생을 가고 휴식은 생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남긴다”며 “그런 향기를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 함께 누리기 바란다”고 말합니다.
혹시 택시에서 노인 냄새가 난다며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면 그건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늙음’을 경멸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며, 아빠에게 향수 사드리기를 제안합니다. 또 아빠와 수족관 가기, 아빠 일터 갑자기 찾아가기, 아빠랑 노래방 가기 등 31가지 소소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좋은 딸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더는 후회하며 살지 않겠다”는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면 아빠에게 전화걸기부터 해보는 게 어떨지요.
이해인 시인은 “우리의 아버지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는지를 가장 소박하고도 구체적인 방법으로 일러주는 실용적인 계획서이며 지침서”라며 “깊은 저음의 첼로를 닮은 그리움으로 ‘아버지’하고 나직이 불러보자”고 했습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