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자원봉사 근본인식 바뀌어야”… ‘독일 자원봉사자 대모’ 한 미 순 베를린 기독교대학 강사

입력 2013-09-11 19:28 수정 2013-09-11 19:17


철학을 전공했던 평범한 20대 여성은 1988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과 달리 자원봉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독일 사회를 접하고 사회복지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독일 뮌스터 대학을 졸업한 이 여성은 독일에서 ‘자원봉사자를 통한 사회통합’을 강조하며 사회복지 지원사업에 이들을 투입하는 역할을 했다. ‘자원봉사자의 대모(大母)’로 불리는 독일 베를린 기독교대학 강사 한미순(51·여)씨 이야기다. 3년 만에 한국을 찾은 한씨는 1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도 자원봉사를 더욱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씨는 대학 졸업 후 10년간 뮌스터 시청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난민 상담 사업을 맡았다. 모국에서 한 차례 상처를 받고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떠나온 난민들은 이방인이라는 시선에 또다시 상처 받아 마음의 문을 닫은 경우가 많았다. 한씨는 난민들이 사회복지사 대신 자원봉사자들과 상담할 때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회복지사는 예산이나 정치적 요소를 고려해 종합적인 상담을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순수하게 발 벗고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원봉사자들과 만난 난민들은 자신들을 거부하고 차별했던 독일 사회에 대한 반감을 덜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한씨는 2004년 베를린의 ‘사단법인 류마티스연합’ 자원봉사자 매니저로 일했다. 그는 이때 만난 20대 여성 봉사자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의사였던 여성은 시간을 쪼개 독일에 거주하는 세르비아 전쟁 난민 가정의 의료 지원 봉사를 했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류머티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병원까지 데려다 주는 것뿐이었지만 그는 미술관 견학 등을 시켜주며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한씨는 “병원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사소한 봉사가 그 아이를 이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라나게 했다”며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자원봉사의 힘”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20여년 현장에서 본 것을 토대로 지난해 뮌스터대학에서 ‘자원봉사와 사회통합’이라는 박사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독일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슈프링어 파우에스’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한씨는 “한국 사회는 아직 자원봉사자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원봉사가 입시나 취업 스펙을 위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독일은 4명 중 1명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만큼 분야도 다양하다. 한씨는 “독일 사회에서는 이력서에 자원봉사 경력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대우해 준다”며 “우리나라도 자원봉사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