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균열] 이석기 사태를 보면서

입력 2013-09-11 17:44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참된 지식을 ‘에피스테메’라고 칭했다. 개인이나 특정세력이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억견과 대조되는 말이다. 참된 지식은 자신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고 만인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를 부정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아닌 것이다. 말 그대로 사이비인 것이다.

작금에 이와 비슷한 형국이 벌어지고 있다. 한 국회의원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 애국가를 불렀다는 사실이 온 언론에 떠들썩하게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바로 국회의원 이석기의 얘기이다.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바를 하게 된 것이 어떻게 기사거리라 할 수 있을지 한심스러운 일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됨에 따라 내란음모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조사되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석기 의원 본인과 소속 정당인 통합진보당은 반국가적 혁명 조직을 뜻하는 소위 ‘RO’회합에서 자신들이 논의한 ‘총기탈취’ 등의 발언들이 ‘농담’이라거나 여전히 ‘이 의원은 무죄’라는 등 진실을 왜곡해서 말하고 있다. 설령 농담을 했다고 전제하더라도 국록을 먹는 정당원들과 국회의원으로서 입에 올릴 만한 주제는 아니다.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발언을 계속해대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그들의 당 강령에 북한이 주장하는 바와 똑같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해체를 주장하고 있고, 6·25전쟁을 민족해방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게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하고, 국회를 국정원과의 대결구도로 놓고 투쟁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자의 발언은 자신들의 드러난 공식문건 속에 종북 의도를 숨기고 있으며, 후자의 발언은 자신들이 구호로 내거는 민주주의 3권 분립 취지에 완전히 배치된다. 그들은 또한 국정원의 이 의원에 대한 체포·조사가 지난 대선정국 속에서 국정원에 의해 진행됐다고 하는 소위 ‘댓글 달기’와 지난 정권의 ‘NLL 무효화’ 논란 등을 얼버무리기 위한 현 정권의 숨은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역공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특히 국정원은 내부개혁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대북정보 업무 복원과 다양한 포괄적 안보분야에 대한 보강, 그리고 직원들의 정치적 중립성 강화 등 각고의 내부 개혁이 국민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간첩 잡는 일과 내부 개혁을 동시에 병진해야 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고민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비례대표인 이석기 의원이 직위를 상실하게 되면 그 다음 승계예정자는 더 강한 종북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가에서는 협상을 통해 이석기 의원을 그대로 자격을 유지하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문제 있는 발상이다.

오늘날 이석기 사태는 정치적 타협의 주제가 아니다. 반국가 단체와 그 활동을 하여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국가안위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려는 문제이다. 마땅히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사해야 하고 범법사실이 드러나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만약 그 다음 승계자도 범법사실이 드러나면 적법한 절차를 따르면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반국가활동을 강령으로 내거는 정당들은 등록 사전 심의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필수적으로 받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균열 경상대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