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베이스 목소리 빌려, 바그너 ‘최후의 고백’

입력 2013-09-11 17:32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가 남긴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이 국내 초연된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 장장 5시간에 이르는 대작인데다 장엄한 음악,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쉽지 않은 공연이다. 그런 만큼 공연 자체가 한국 오페라역사에 기록될 작품이기도 하다. 2008년 국내 첫 선을 보일 예정이었으나 예술의전당 화재 사건으로 무산됐다.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10월 1, 3, 5일 세 차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파르지팔’을 공연한다. 오페라는 오후 4시 시작돼 1막이 끝난 후 1시간을 쉰 후 재개된다. 저녁식사를 하고 오라는 뜻이다.

‘파르지팔’은 바그너의 ‘최후의 고백’과도 같은 그의 마지막 작품. ‘인디아나 존스’ ‘다빈치 코드’ 등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됐던 성배(聖杯) 전설을 바탕으로 했다. 독일 작가 볼프람 에셴바흐의 ‘파르치팔’을 원작으로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했다. 초연은 1882년 7월 26일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이뤄졌다.

방대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성배의 왕 암포르타스의 상처가 낫기 위해서는 ‘순수한 바보’가 나타나야 한다. 성배 기사단의 원로인 구르네만즈는 파르지팔에게서 바보 구원자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랜 방황 끝에 파르지팔이 암포르타스의 상처를 낫게 하고, 성배 왕의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파르지팔의 한국 초연이 가능하게 된 데는 베이스 연광철(48·서울대 교수)의 힘이 컸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베이스로 꼽히는 연씨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주역가수로 활동 중이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1876년 바그너가 지은 극장에서 바그너의 오페라만을 공연하는 축제.

1996년 이곳에 입성한 그는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라인의 황금’ ‘발퀴레’ 등으로 호평 받았고, 2008년 ‘파르지팔’에서 주인공 구르네만즈 역으로 데뷔하며 명성을 굳혔다. 그동안 스페인 마드리드, 오스트리아 빈, 독일 뮌헨·베를린 공연을 통해 ‘세계 최고의 구르네만즈’라는 찬사를 받았다. 충북 충주에서 공고를 졸업한 그는 독학으로 음대에 입학한 후, ‘베이스의 산실’인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세계 최고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구르네만즈 역을 맡은 연광철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드디어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올리게 돼 기쁘다”며 “‘파르지팔’이 길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관객도 많지만, 줄거리와 종교적인 내용을 부합해서 보면 다가오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출연진과 제작진도 화려하다. 파르지팔 역은 강인하면서도 순수한 목소리의 영국인 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가 맡았다. 2008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이 작품으로 데뷔해 파르지팔 전문 가수로 활동 중이며 연광철과 수차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여주인공 쿤드리 역은 스위스 출신 메조소프라노 이본 네프가 캐스팅됐다.

지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음악감독 및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지낸 독일인 로타 차그로섹이 맡는다. 바그너 작품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그는 무려 16시간에 걸쳐 공연하는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모두 연주, 호평 받은 바 있다. 그와 호흡을 맞추는 연출가는 세계 오페라 극장을 누비며 바그너 작품을 선보여온 프랑스 출신의 필립 아흘로. 연출뿐 아니라 무대, 조명을 모두 담당한다.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고, 국립합창단과 CBS소년소녀합창단이 참여한다. 1만∼15만원.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