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 안으로 들어온 ‘맛있는 가을바다’
입력 2013-09-11 17:10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들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바다가 더욱 풍성해진다. 충남의 서해안 포구마을은 전어와 대하 굽는 냄새가 구수하고, 물 빠진 독살에서는 고등어와 꽃게 등 온갖 물고기들이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체험객들과 숨바꼭질을 한다. 상다리가 휠 정도로 풍성한 서해안으로 독살체험과 갯벌체험을 겸한 가을 별미여행을 떠나본다.
자라바위 턱밑까지 밀려왔던 바다가 토끼가 뜀박질을 하듯 빠른 속도로 수평선을 향해 저만치 물러나자 잿빛 바다 속에서 검은 돌담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V자 형태의 검은 돌담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독살. 마을주민과 체험객들이 물 빠진 독살 속에서 족대와 맨손으로 ‘독 안의 물고기’를 잡느라 온몸이 개흙 범벅이다.
독살로 유명한 충남 태안군 남면의 원청리는 노루미해변과 맞닿은 한적한 어촌체험마을. 자라가 토끼의 간을 구하기 위해 육지에 첫발을 디뎠다는 용새골과 토끼가 ‘간을 떼어 청산녹수 맑은 샘에 씻어 감추어 놓고 왔다’는 묘샘을 비롯해 궁앞, 안궁 등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이 주민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고 있어 별주부마을로 불린다.
돌담을 쌓아 만든 독살은 석방렴(石防簾)에서 유래된 말로 음을 따서 ‘독살’ ‘돌살’ ‘돌발’로 부른다. 밀물 때 물의 흐름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그 안에 갇혀 나가지 못하게 해서 잡는 원시어업의 일종으로 별주부마을을 비롯한 태안에는 독살이 100여 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로 기술의 발달로 방치된 채 파도에 휩쓸려 대부분 사라졌다. 별주부마을에도 10여개의 독살이 있었으나 유실된 채 방치되다 체험학습용으로 몇 개가 복원됐다.
바닷물이 물러나면 노루미해변엔 맨 먼저 작은 갯바위들로 이루어진 안여가 모습을 드러낸다. 따개비를 비롯해 온갖 바다생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안여는 맛이 지천으로 자라는 맛밭. 독살은 안여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다. 큰독살이 먼저 모습을 드러내면 윗장벌갓독살, 째그만독살, 가운데독살, 밑구녕독살 등 위치에 따라 재미있는 이름이 붙여진 독살들이 속속 수면 위로 솟는다.
썰물 때 독살은 물 반 고기 반이다. 독살의 배수구멍(입통)에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발이 걸려 있어 빠져 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은 발목 깊이의 물에서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몸부림을 한다.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난류성 어종인 손바닥 크기의 고등어가 떼로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
수온 변화와 남획으로 물고기가 많이 줄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하룻밤 새 독살 하나에서 20가마가 넘는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잘 나가는 독살’에 세금을 물린 것은 이 때문이다. 독살에 갇힌 물고기는 퍼 담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무릎 높이로 물이 빠지면 어부는 길이가 5m쯤 되는 삼각형 그물인 사둘을 밀고 다니며 물고기를 뜨고 족대라는 채로 퍼 담는다.
독살체험과 갯벌체험이 끝나면 서해안의 가을 별미를 즐길 차례. 42개의 항구와 포구를 자랑하는 태안반도를 비롯해 홍성 서산 보령 서천 등 충남 서해안 일대가 제철 맞은 가을 해산물로 풍성하다. 전어는 서천 홍원항, 대하는 태안 백사장항과 홍성 남당항, 그리고 꽃게는 태안 안흥항이 유명하지만 요즘은 전어 명소에서 대하도 팔고 대하 명소에서 꽃게도 팔기 때문에 어느 지역을 찾아도 싱싱한 해산물을 입맛대로 골라 맛볼 수 있다.
전어 맛이 가장 좋을 때는 살이 도톰하게 오른 9월부터 10월까지로 ‘가을 전어 머리엔 참깨가 서말’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집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돌아온다’거나 돈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맛있어 전어(錢魚)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할 정도로 그 고소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전어는 주로 구이, 회, 무침으로 먹는데 노릇노릇 구운 전어구이 인기가 높다. 굵은 소금을 뿌려 기름을 빼가며 굽는 전어구이는 뼈를 발라내지 않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씹어 먹는다. 전어회는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는다. 묵은 김치나 파김치도 궁합이 맞다. 무침은 전어회에 양파, 당근, 오이, 깻잎, 배 등을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 낸다.
‘밥도둑’으로 불리는 꽃게는 4, 5월이 제철이지만 알이 많은 가을에도 맛이 좋다. 특히 태안 앞바다에서 잡히는 꽃게는 다른 지역보다 몸집이 크고 육질이 단단하다. 꽃게는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으로 아미노산이 많고 칼슘과 비타민D도 풍부하다. 게살에는 나쁜 콜레스테롤을 줄여주는 타우린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적정 혈압을 유지시키고 시력 감퇴를 예방해준다.
꽃게는 꽃게장과 꽃게찜으로 요리해서 먹는다. 꽃게장은 마늘 생강 등 양념을 넣고 간장을 끓여 식힌 후 꽃게 위에 부어 2∼3일 정도 간이 배면 내놓는다. 게딱지를 벗기면 주황색 알과 게 속살이 드러나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게딱지에 비벼먹는 밥이 맛있다. 속이 꽉 찬 꽃게를 증기로 쪄서 먹는 찜은 입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고소하다.
왕새우로 불리는 대하도 가을이 제철.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쫄깃한 대하는 수컷보다 암컷이 더 크고 맛있다. 주로 날것을 까먹거나 소금구이, 튀김, 찜 등으로 요리해 먹는다. 대하를 소금이 깔린 철판 위에 올려놓고 구워 먹는 소금구이는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으로 미식가들이 많이 찾는다. 머리 부분은 버리지 말고 따로 모아두었다가 바싹 구워 먹는다.
대하는 단백질, 철분, 칼슘 성분이 풍부해 스태미너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총각은 대하를 먹지 말라”는 우스개까지 전해온다. 특히 대하 껍질에는 항암효과가 뛰어난 키틴과 골다공증에 좋은 칼슘이 다량으로 들어 있어 웰빙 식품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다.
태안=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