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1991년부터 본격 해외원조… 수십만명이 매달 후원금
입력 2013-09-11 18:09 수정 2013-09-11 20:45
세계로 뻗는 한국NGO
지난달 인도의 한 가난한 농촌 마을을 찾은 기자는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까만 머리에 작은 눈을 가진 한국 소녀가 거기 그려져 있었다. 국제어린이양육기관 컴패션의 창립자인 스완슨 목사가 고아 소녀를 안고 있는 사진이 지구촌 어린이를 향한 인류의 사랑을 상징하는 그림이 되어 있었다.
6·25전쟁으로 한국을 도왔던 외국NGO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의 더 가난한 나라와 아프리카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을 향해서는 “이제 한국은 한국인들 스스로 해결하라”는 당부를 남겼다. 한국은 그들의 당부를 뛰어넘었다. 제3세계 어린이를 매달 돕는 이들이 수십만명에 이른다. 매년 휴가철이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돕기 위해 단체로 떠나는 NGO 후원자들의 행렬이 공항 곳곳에서 목격될 정도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성장한 최초의 사례가 된 한국의 NGO들은 전 세계 NGO들 사이에서도 존경을 받는다. 국제회의가 열리면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한국 대표를 찾아와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해오고 있다.
한국 NGO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원조에 나선 것은 1991년부터였다. 월드비전과 어린이재단이 이해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돕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출발은 1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78년 5월 월드비전(당시 한국선명회) 창립 25주년 행사장에 1만 달러(당시 500만원)가 전달됐다. 그동안 월드비전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한 1만8000여명이 한푼두푼 모은 돈이었다. 이들의 부탁은 딱 하나였다. “우리보다 더 어려운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는 데 써주세요.”
이런 정성이 없었다면 한국이 외국을 돕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 NGO들이 마음속에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짐이 있다. 북한이다. 한 NGO 관계자는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도움을 주는데, 정작 휴전선 북쪽은 제대로 돕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북한 어린이와 결연사업을 펼치고 있는 기아대책, 농업발전을 돕는 월드비전 등 적지 않은 NGO들이 북한을 돕고 있지만,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어려움이 크다. 기독NGO들의 큰 기도 제목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