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史를 바꾼 한국교회史 20장면] ⑪ 구호의 본 보인 기독 NGO
입력 2013-09-11 18:09 수정 2013-09-11 21:15
‘하나님 마음으로…’ 민간 구호, 받는 나라서 주는 나라 됐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직후인 1950년 10월 미국 ‘크리스천 다이제스트’의 특파원이 한국에 왔다. 그는 거제도의 포로수용소에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게 하는 것들이 나의 마음도 아프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는 피비린내 나는 전선의 곳곳을 다니며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고,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남편을 잃은 아내를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 특파원이 바로 월드비전의 설립자 로버트 윌라드 피어스 목사다.
1·4후퇴와 3·8선 인근의 치열한 공방으로 전쟁의 포화에 지쳐가던 52년 겨울 또 한 명의 미국인 목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미군 병사를 위로하는 집회를 인도하러 온 에버렛 스완슨 목사는 서울의 거리에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쓰레기 더미에 숨었다가 죽어가는 어린이를 목격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기도한 스완슨 목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국 어린이를 살리자고 외쳤다. 스완슨 목사가 설립한 단체의 이름은 마태복음 15장 32절의 ‘내가 무리를 불쌍히(compassion) 여기노라’는 말씀에서 따온 ‘컴패션’이다.
한국의 근대적인 민간 구호기관의 역사는 기독교에서 시작됐다. 한국의 구세군 시설을 지원한 미국 기독교아동복리회(CCF) 한국지부가 설립된 1948년부터 잇따라 미국 기독교인들이 한국을 돕기 시작했다. CCF한국지부는 현재의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다. 어린이재단은 5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전문 병원을 설립했고, 63년에 세운 아펜셀러어린이회는 오늘날 지역사회복지관의 효시가 됐다.
한국에서 활동한 외국 NGO들의 지원은 53년부터 70년까지 현금을 제외하고 양곡 헌옷 의약품 기타 생필품 등 모두 115만7000t으로 약 2억5000만 달러의 규모라고 한다. 1970년대 초까지도 해외에서 보내온 원조금이 보건복지부 예산보다 더 많았다.
후원자와 어린이를 일대일로 이어주는 결연사업도 한국에서 시작됐다. 51년 다시 한국을 찾은 월드비전의 피어스 목사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백옥현씨와 4명의 딸을 부산에서 만났다. 남편은 피어스 목사와 함께 서울사대부중에서 성경공부반을 인도했던 김창화 교사로,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 숨졌다. 피어스 목사는 백씨의 가족에게 매달 25달러씩 생활비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시작된 결연 사업은 이제 한국인이 제3세계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로 전환됐다.
이제는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떡과 복음을 함께 전하는 기아대책 등 다양한 특징과 개성을 가진 NGO들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국제단체가 아닌 한국의 토착NGO들도 다양하게 성장했다. 이웃사랑회로 출발한 굿네이버스는 올해 창립 23년을 맞았고,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시작된 구호단체 선한사마리아인회는 국제NGO 굿피플로 성장했다. 태안 유조선 사고를 계기로 결성된 한국교회 희망봉사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회원교단이 창립한 한국기독교 사회봉사회 등 수많은 단체들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NGO의 성장은 한국인들의 세계관도 변화시켰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사실, 또 실제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이 세계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세계를 무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시야를 확장시켰다. 2010년 아이티의 지진 참사 사태 당시 한국인들은 이름도 잘 알지 못했던 지구 반대편의 나라를 위해 수백억원을 모았다. 당시 국민일보와 한국교회 희망봉사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공동 캠페인으로 37억원의 성금을 모았다. 월드비전은 애초 목표액인 5억5000억원의 5배가 넘는 금액을 모금했다. 기독교 교단과 NGO를 통해 모금된 금액만 15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NGO의 성장으로 한국 교회의 입장에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얻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해외 선교와 기독교NGO의 국제구호 활동이 겹치면서 “구호를 핑계로 선교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현장에선 구호활동과 선교활동은 엄격히 구분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선교와 NGO 활동의 협력과 구별이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또 국제적 수준에 맞는 회계 투명성을 확보해 NGO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도 시급하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자문해주신 분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 △박용규 총신대 신대원 교수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 △이상규 고신대 부총장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