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 5년 진단] 일부 요양원, 샤워실 없어 변기 뚜껑에 앉혀 목욕

입력 2013-09-11 05:05

방과 복도 사이에는 1㎝가 넘는 턱이 보였다. 지난해 입소자 한 명이 턱에 걸려 넘어져 다친 뒤 시멘트로 발라 턱을 없앴는데 몇 군데를 빠뜨렸다. 샤워실은 없었다. 요양보호사들은 층마다 하나씩 있는 화장실 변기 뚜껑에 벌거벗은 어르신들을 앉혀 놓고 목욕을 시킨다고 했다. 힘들면 일반 휠체어에 태운 채 물을 뿌리거나 침대에 뉘어놓고 물수건으로 닦았다. 요양보호사는 “전용 샤워실이 없어 걱정하는 보호자들이 있는데 변기도 꽤 편리하고 안전하다”며 웃었다.

지난 4일 방문한 서울 금천구 ㄱ요양원에는 1~3등급 노인 14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치매환자가 있다는데 시설 현관문에는 걸쇠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 5분 넘게 시설을 활보해도 말 거는 이가 없다. 한참 뒤,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구석의 요양보호사가 다가왔다. 시설 소개를 부탁하자 그는 “인근에서 제일 싸고 가족적이다. 월 42만원이면 다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가족적 분위기’의 증거는 이런 것들이었다. 요양보호사들이 피곤하면 할머니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고, 식판 하나를 놓고 요양보호사와 환자가 밥을 나눠 먹었다. 물론 인지·물리·운동치료 프로그램은 없었다.

9일 방문한 수원시립노인전문요양원의 텃밭 앞에는 휠체어를 탄 어르신들이 요양보호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같은 시간 지하 프로그램실에선 치매노인들을 위한 ‘물고기 모빌 만들기’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매직으로 종이에 색을 칠한 뒤 물고기 모양 비닐을 채우는 일종의 인지치료였다. 오후 4시에는 2층 널찍한 생활공간에 40여명의 노인이 모여 트로트 가락에 맞춰 손뼉을 치는 운동시간이 이어졌다. 안전기구가 갖춰진 화장실은 방마다 하나씩 있었다. 각 층에는 특수목욕실이, 목욕실에는 아예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와상환자를 위한 전용 목욕통이 구비돼 있었다.

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 평가’를 보면 A와 E등급 시설의 점수 차이는 무려 86점(최고 100점, 최하 14점)이었다. 2012년 ‘방문요양 평가’에서도 점수 차는 75점(최고 100점, 최하 25점)이나 벌어졌다. 질 차이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법인 시설 관계자들은 “이 정도 격차가 제도권 안에서 공존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서비스 질과 무관하게 시설은 건보공단으로부터 같은 돈을 받는다. 2011년 평가에서 D등급을 받은 ㄱ요양원과 A등급을 받은 수원시립요양원은 1등급 입소자 1인당 건보공단으로부터 약 126만원(총 비용의 80%)을 타냈다. 본인부담금(입소시설 20%)과 밥값 등 실비를 포함해 환자가 내는 돈의 차이도 1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환자들은 천양지차 서비스를 거의 같은 돈을 내고 받는 셈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건보공단은 A·B등급 우수시설에는 2~3%의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하지만 잘하는 곳을 더 잘하게 할 당근은 있는데 D·E등급 시설의 개선을 유도할 채찍은 없다. 금천구의 ㄱ요양원이 D등급 평가를 받은 지 2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게 없는 이유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낮은 등급기관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