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 5년 진단] ‘노인 모셔가기’ 혈안 된 요양기관
입력 2013-09-11 05:03
할아버지 댁에는 못 보던 이동식 변기와 기저귀가 놓여 있었다.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받던 할아버지는 막 퇴원해 집에 돌아온 참이다. 지난달 말 노인 700여명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요양기관에서 벌써 다녀갔구나.” 간호사 안상미(가명)씨는 한눈에 요양기관이 왔다간 흔적을 알아봤다. 변기·기저귀는 ‘우리 시설을 이용해 달라’는 뜻으로 주고 간 판촉상품이었다. 이 동네에서는 흔한 일이다. 평균 나이 78세의 기초수급자들이 밀집한 단지는 인근 시설들의 각축장이었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문이 돌면 물티슈 쌀 기저귀 같은 선물을 싸들고 요양보호사들이 몰려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1~3등급 노인들은 요양보호사로부터 하루 1~4시간의 수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방문요양제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체 비용의 85%(75만~97만원)를 대고 환자는 나머지 15%(13만~17만원)만 부담한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본인 부담금도 정부가 책임진다. 등급을 받은 고객 1명당 월 87만(3등급)~114만원(1등급), 1년이면 최고 1400만원에 육박하는 수입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안씨는 이웃 할머니(81) 댁에서도 비슷한 선물을 발견했다. 혼자 거동이 가능한 할머니였는데 요양기관 관계자는 침대 옆에 이동식 좌변기를 가져다 놓고 허위로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 교육했다. 할머니는 “사람들이 와서 물어보면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여기서(좌변기) 일 본다’고 하라더라”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랬는데…”라고 얼버무렸다. 안씨는 “선물 들고 동네 오가는 요양시설장이 두셋 있다. 누군지 잘 안다”며 “그런 기관의 요양보호사일수록 서비스가 엉망이다. 휠체어에 어르신들 앉혀 놓고 마당에서 꾸벅꾸벅 졸기만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동네 정자에서 만난 90·76세 두 할머니도 같은 얘기를 했다. 할머니들은 “이태 전에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서류를) 써주면 와서 청소해주고 밥도 해준다고 했다”며 “동네에 그러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출범 이래 전체 요양기관이 배로 늘어나는 동안 개인이 설립한 민간기관은 535개에서 2940개로 6배 가까이 급증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돕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요양보험은 만족도가 가장 높은 복지제도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지난 5년 민간시설을 중심으로 시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경쟁은 치열해졌고, 과당경쟁은 편법으로 이어졌다.
같은 단지의 안모(76) 할아버지는 며칠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등급판정 신청을 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요양보험이 뭔지도 모르는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했다. 두 딸은 외국에 거주해 대리 신청도 불가능했다. 할아버지의 등급 판정을 담당한 건보공단 직원은 “고객 확보에 혈안이 된 요양기관들이 건강한 노인들의 등급 신청까지 몰래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