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교수들 “백양로 무차별 훼손 말라”… 마지막 은행나무 지키기 불침번 선다
입력 2013-09-10 20:02
연세대의 상징인 ‘백양로’가 학교 측의 캠퍼스 개발 공사로 사라질 상황에 놓이자 교수들이 천막을 치고 ‘불침번’을 서가며 저지에 나섰다. 정문에서 본관에 이르는 길인 백양로는 높다란 은행나무 30여 그루가 이미 뽑혀 나갔고 교수들은 마지막 남은 은행나무 한 그루를 지키기 위해 몸으로 공사를 막고 있다.
지난 6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중앙도서관 앞에서 경영학과 서길수 교수와 영문학과 이경원 교수가 은행나무를 뽑으려는 기중기와 대치했다. 두 교수는 기중기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다 급기야 뿌리가 드러나도록 파헤쳐진 은행나무 옆에서 팔짱을 끼고 버텼다. 이들의 기세에 밀린 기중기는 결국 공사를 포기하고 철수했다.
서 교수는 “아침에 출근했더니 수십 년간 백양로를 지켜온 은행나무 30여 그루가 모두 뽑혀 나가 있어서 너무 놀랐다”며 “마지막 한 그루마저 옮기려는 걸 보고 이 교수와 함께 나무에 올라탔다”고 말했다. 이후 평교수 20여명은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마지막 은행나무 옆에 천막을 치고 교대로 불침번을 서고 있다. 천막이 들어선 중앙도서관 부근을 제외하곤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서 교수는 “백양로는 이한열 열사가 숨진 민주화의 성지이고, 연세대를 거쳐 간 동문들의 추억이 담긴 곳”이라며 “4년간 백양로를 걸으며 첫사랑 같은 다양한 추억을 쌓은 동문들은 공사 소식을 듣고 흥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학교 측에서 나무를 옮겨 심는다고 했지만 큰 나무는 못 옮긴다고 자르고 암나무는 냄새난다고 자르더니 고작 몇 그루만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며 “백양로의 은행나무들은 60년 정도 됐는데 50년 후에는 더욱 장관을 이루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교수들이 은행나무를 지키려고 밤을 새운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현장을 찾는 학생과 동문도 늘고 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이곳에서 퍼포먼스와 영화제 등을 개최하며 학내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마지막 은행나무 앞에서 수업을 하려는 교수도 있다. 공사장에 세워진 대형 플라스틱 벽에는 공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벽화를 그렸다.
학교 측의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2015년 5월까지 900억원을 들여 차도와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는 녹지와 광장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일부 교수들은 이 프로젝트가 생태·문화적 가치를 무시한 채 졸속으로 추진되는 대형 주차장 사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평교수 230여명으로 구성된 ‘연세 캠퍼스를 사랑하는 교수들의 모임’이 성명을 내고 공사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부족하지도 않은 주차장을 짓기 위해 900억원을 쓰는 것은 무모하고 불합리하다”고 반발했다.
캠퍼스 공사로 인한 잡음은 연세대만의 일이 아니다. 2003년에는 고려대, 2008년에는 이화여대와 서강대가 지하캠퍼스를 지어 카페, 레스토랑, 마트 등 상업시설을 유치했다. 당시 고려대 학생들은 지하캠퍼스를 ‘고엑스’(고려대 코엑스)라 부르며 대학 상업화에 반대했고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단식투쟁과 고공농성까지 벌였지만 공사를 막지 못했다. 최근에는 경희대에서 대운동장을 없애고 건물을 지으려다 학생들이 반발해 공사계획이 변경되기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