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反日 작가” 박경리 생전 수필 묶은 ‘일본산고’ 발간

입력 2013-09-10 18:16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가 생전에 일본에 대한 단상을 적은 글들을 묶은 ‘일본산고(日本散考)’(마로니에북스·사진)가 10일 발간됐다.

1부 ‘일본산고’에는 작가가 ‘토지’ 연재 시절 짬짬이 쓴 글과 완간 이후 기록한 ‘증오의 근원’ 등 6편이 수록됐다. 소설 ‘토지’를 통해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생생하게 그려냈던 작가는 언젠가 ‘일본론’을 본격적으로 쓰고 싶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1부에 수록된 글은 2008년 사후 유품 정리 중 발견된 원고들로, 작가가 직접 ‘미완’이라고 표시한 글도 눈에 띈다.

그 중 ‘일본인들의 오해, 우리의 착각’ 편에서 작가가 1980년대 후반 자신을 만나러 찾아온 일본 문학지 편집장에게 스스로를 “철두철미한 반일(反日) 작가”라고 소개한 일화가 흥미롭다. 당시 작가는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2부는 작가가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등에 기고했던 글 중 일본 문화에 대해 쓴 글을 모았다. 3부에는 1990년 잡지 지면을 통해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와 펼쳤던 논쟁을 실었다. 다나카가 쓴 ‘한국인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란 글을 박경리가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식이다. 박경리는 “나는 일본의 양심에 기대한다. 그런 양심이 많아져야 진정한 평화를 일본은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썼다.

20여 년 전 쓰인 글이지만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끊이지 않는 역사 왜곡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지금 시점에 읽어도 시사하는 바가 여전히 크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