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나누고 싶은데”… 가족 반대에 막힌 장기기증

입력 2013-09-11 05:07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로 등록한 20대 여성 A씨에게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가 연락을 시도한 건 지난달이었다. 국립장기이식센터에서 환자와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하는 기증희망자를 검색해 A씨를 찾아낸 뒤 협회에 이식조정을 신청했고, 협회는 A씨에게 기증을 부탁하러 연락했다.

A씨는 일치도, 연령 등을 모두 고려한 우선순위 명단에서도 가장 적합한 기증자로 꼽혔다. 협회는 문자·이메일·우편으로 이식절차 정보를 모두 제공하고 다섯 차례 이상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1주일 뒤 A씨는 “얘기를 나눠봤지만 가족들이 원치 않아 기증을 못 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20대 여성 B씨도 비슷한 시기에 협회의 연락을 받았다. 그는 “꼭 기증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협회 측은 “가족과 상의해 일정을 조정해 보자”며 자료를 우편으로 보냈다. 열흘 뒤 B씨는 뜻밖에 기증을 거부했다. 가족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였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부모님 반대가 완강했다. 기증하지 못하게 돼 안타깝다”고 전해왔다. A씨와 B씨의 희망적 답변을 기다렸던 환자들은 다시 항암치료 등으로 하루하루 견디며 해외 유관기관을 통해 기증자를 찾는 중이다.

장기나 골수 등의 기증을 희망했다가 철회하는 경우 3명 중 1명은 가족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부터 올 7월까지 조혈모세포 기증희망자로 등록했다가 실제 기증할 상황에서 철회한 경우는 5256건이고, 이 중 1749건(33%)이 가족 반대로 무산됐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는 대부분 장기기증 때 반드시 가족 동의를 받도록 법률로 정하고 있다. 신체를 부모에게 물려받았기에 몸에 손을 대려면 부모 허락이 필요하다는 유교적 전통이 반영됐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12조는 기증을 위해선 본인 동의 외에도 가족 또는 유족의 순서에 따른 선순위자 1명의 서면 동의가 필요하다. 반면 미국 등 서구 대다수 국가는 본인 희망을 우선시해 본인 동의만으로도 기증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이해가 부족해 가족의 반대가 많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 기증희망등록자는 인구의 2% 정도로 저조하다. 실제 기증인도 이식 대기자에 비해선 턱없이 적어 해마다 환자 1000여명이 이식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다. 장기기증 희망 등록자는 2008년 58만1205명에서 지난해 111만9677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지만, 실제 장기 기증자는 1900명에서 2561명으로 600여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장기기증 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이두리 사무관은 “법을 고치면 가족 반대로 무산되는 경우가 조금 줄어들 수 있겠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기증이 자연스러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무관은 “화장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신체 훼손 금기가 완화되면 거부반응도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