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입력 2013-09-10 20:59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시리아 화학무기 감독지대 설치’ 제안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시리아를 향해 화학무기 폐기를 촉구하는 깜짝 제안 직후 나왔다.
반 총장은 9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리아의 화학무기와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증거 등을 유엔 총괄하에 시리아 내 안전지대로 옮겨 파괴하자”며 “이는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의견이 갈려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간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앞서 라브로프 장관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시리아가 보유한 화학무기를 국제적 통제에 맡겨 파기하도록 하자”고 제안,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반 총장의 제안은 라브로프 장관과 비슷한 내용이다. 사실상 똑같은 제안을 시간차를 두고 한 셈이다. 물론 반 총장까지 가세해 시리아 사태의 평화적 방식의 돌파구를 찾자는 게 부각됐지만 이쯤 되면 누가 유엔 사무총장인지 헷갈린다.
반 총장은 지난 5∼6일 러시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시리아 사태 논의를 주도하지 못했다. 각기 이해관계가 달라 어느 정상도 시리아 사태에 대해 입을 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장국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만찬자리에서 불쑥 시리아 얘기를 꺼내 그나마 의견을 공유했다. 반 총장은 이 자리에서 정치적 해법을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반 총장의 발언과 관련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은 정치적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반 총장만 머쓱해졌다.
반 총장의 ‘뒷북 대응’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 직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1일 공격이 있었지만 그는 22∼26일 5박6일의 고국 휴가를 다녀왔다. 이달 초 미국이 시리아에 단독 공격이라도 감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지난 4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청, “유엔 안보리 승인 없는 군사공격은 안 된다”는 공허한 메아리만 남겼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