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미래전쟁의 시작
입력 2013-09-10 17:29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 테러 전략과 전술의 중심에 ‘드론(drone)’으로 불리는 무인항공기(UAV·Unmanned Aerial Vehicle)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기적으로 드론의 사용이 ‘미국을 안전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치열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난 5월 미국이 테러조직 알카에다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드론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데 대해 별 이견이 없다.
2008∼2012년 오바마 대통령 집권 첫 4년 동안 미국은 400여 회의 드론 공격을 단행했다. 이는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8년간 50회 미만에 그쳤던 것과 대비된다. 드론 공격으로 사실상 알카에다 지도부는 와해됐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의 험준한 산악이나 예멘·소말리아의 은신처에서 우호적인 지역민을 방패막이로 삼아온 알카에다의 핵심 간부와 노련한 행동대원들은 드론 공습에 차례차례 제거됐다.
하지만 드론이 대 테러전의 주요 병기에 그친다고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무인 프로그램 관련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드론은 현대전의 본질을 바꾸고 세계 군사력의 판도에 영향을 미칠 핵심 병기로 부상했다.
◇미국, 1994년 첫 배치=드론의 가치에 처음 눈을 돌리고, 개발과 운용에서 가장 앞선 국가는 역시 미국이다. 미 공군은 1994년 약탈자라는 뜻을 가진 프레데터(Predator) 무인 정찰기를 실전 배치했고, 다음해 보스니아 공습에 이를 처음 투입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3년 이라크전에는 다양한 종류의 드론이 정찰뿐 아니라 미사일을 장착해 공격에도 본격 참가했다. 사실상 무인 병기가 사용되는 ‘미래형 전쟁’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로버츠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재정난으로 각종 국방 프로그램을 칼질했지만 드론 프로그램 관련 예산은 한 푼도 건드리지 않았다.
드론이 각광받는 이유는 탁월한 성능과 저렴한 비용에 있다. 미국의 최첨단 리퍼(Reaper) 드론의 경우 최대 24시간 동안 활동하면서 8㎞ 상공에서 목표물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선명한 화면을 컨트롤센터로 전송한다. 여기다 족집게 같은 정확도로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수천㎞ 떨어진 컨트롤센터에서 드론을 원격으로 움직이는 드론 조종사 육성과 운영에 드는 비용은 유인 항공기 조종사의 10분의 1 정도다.
처음에는 드론이 지금 같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유인 항공기가 할 수 없는 장기간의 공중 정찰·감시와 화학·생화학 무기 공격의 증거 채취, 추락 조종사가 인질로 악용될 수 있는 적국의 방공망 테스트 등 ‘더럽고 위험한’ 업무 등에 한정적으로 투입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전자·항공·나노 분야의 급속한 기술 발전으로 드론이 효율성과 안전성, 지속성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유인 항공기를 능가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009년 미 공군이 마련한 무인기 개발과 운용에 관한 청사진 ‘UAS 비행 계획 2009∼2047년’에는 이러한 비전이 잘 나타나 있다. 이에 따르면 공중경보기(AWACs)와 공중급유기, 전략수송기와 장거리 폭격기 등 대형에서부터 소형 정찰기에 이르기까지 공통의 기체와 생산라인을 가진 ‘드론 군(群)’이 제조·공급될 예정이다.
사실상 현재 미 공군력의 핵심 전력을 드론으로 대체하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차세대 드론은 인공지능이 강화돼 인명 살상 여부도 자체 판단하는 등 자율성이 커질 것이라고 미 공군은 예상한다.
◇정규 군사력 핵심 부상=드론의 파급력은 공군 전투력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최근 항공모함에서 착륙과 이륙이 가능해진 것은 세계 해군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미 해군은 항공모함에서 드론 이륙실험에 성공한 데 이어 착륙실험에도 성공했다. 항해 중인 항모에 착륙하는 것은 일반 전투기 조종사들도 수년간의 훈련이 필요할 정도로 가장 까다로운 기술로 평가된다.
이 실험 성공이 주목되는 것은 최대 사정거리 1500㎞인 중국군의 탄도미사일에 노출된 미 항공모함의 방어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큰 연료탱크로 인한 제약으로 작전 반경 확대에 한계가 있는 유인 함재기에 비해 드론은 최대 24시간까지 공중에 머물 수 있어 항공모함 항공전력의 결함을 크게 보강할 수 있다. 군사·안보정보업체 스트랫포는 지난 5월 “항공모함 사용이 가능해져 드론의 작전범위가 사실상 무한정 늘어나게 되면 좁혀지던 미·중간 군사력 격차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드론은 육군 전투력 향상에도 주요 병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전투 지휘관들은 공중에 띄워놓은 초소형 드론이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정보·감시·정찰 정보를 종합해 상황을 판단하고 병력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게 된다.
◇국제법·윤리 논란=공중에서 예고도 없이 표적 살인을 행하는 무인병기의 등장은 국제법 위반 논란과 함께 윤리적 문제도 야기한다.
무인기 공격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한데다 무인기 공격의 대상이 되는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고 있는 만큼 미국의 무인기 공격은 합법성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생명의 위협에 대응해 체포나 기타 비살상적 방법 등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에 한해 살상적 방법을 허용하고 있는 국제인권법에도 미국의 무인기 공격은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앞으로 미 공군의 계획대로 인공지능이 강화된 드론이 자체 판단으로 정찰 대상을 선정하고 심지어 공격해 오폭 등의 문제가 생길 경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등 까다로운 윤리적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