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두환 추징금 납부는 정의 세우기 시작일 뿐

입력 2013-09-10 18:37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가족들이 나눠 내기로 해 그동안의 논란이 일단락되긴 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대통령까지 지낸 인사가 범죄로 벌어들인 부당수익을 국가에 내지 않은 파렴치가 무려 16년 동안 지속되도록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불법을 눈감아주고도 선량한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했던 정치권과 검찰도 딱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 돼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작업은 1997년 대법원이 이들에게 내란죄 및 뇌물수수죄를 적용해 확정 판결을 내린 이후 십수 년을 끌어왔다. 전씨에게는 2205억원, 노씨에게는 2628억원의 추징금이 선고됐지만 이들은 추징금 일부만을 내놓고선 돈이 없다며 버텼다. 이른바 ‘전두환추징법(공무원 범죄 몰수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검찰이 수사를 개시해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마지못해 백기를 든 것에 불과하다.

미납한 추징금을 자진납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오래 전에 이행했어야 할 의무를 한참 뒤에 억지로 한 것이라 참회나 반성의 빛은 전혀 없어 보인다. 천문학적인 뇌물을 받아 이리저리 숨겨놓고는 돈이 없다고 잡아떼다가 일가족이 영어의 몸이 될 것 같으니 할 수 없이 항복한 것 아닌가. 시중에는 두 사람이 사후 국립묘지에 안장되기 위해 추징금을 낼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전씨 일가의 조세포탈 및 은닉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 등을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죗값을 받게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추징금 납부가 그간 지은 죄의 면죄부로 작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추징금 납부 지연에 따른 경제적 이익만 1000억원이 넘는다고 추산하고 있다. 전씨와 노씨 가족들은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왔다는 이유로 마치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진 것처럼 ‘검은돈’을 밑천 삼아 재산을 불렸다. 변변한 돈벌이 수단 하나 없었던 평범한 시민이 아버지가 뇌물로 받은 돈을 종잣돈 삼아 수백억, 수천억원대 재산가가 된 것이 사실이고, 이것이 용서된다면 어찌 정의가 바로 선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는 자고나면 4대강 사업 비리, 세무공무원 비리 등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는 부끄러운 부패공화국이 된 지 오래다. 지난 7월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는 우리나라의 부패 수준이 아시아 지역 선진 17개국 중 8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나 태국보다도 순위가 떨어진다. 부패 대통령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원죄가 그만큼 무겁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사법정의가 제대로 서고 부패가 완전히 사라지는 초석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