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용신] 아, 이 무식한 엄마라니

입력 2013-09-10 18:33


프랑스에 있다는 아들한테 무식한 엄마가 이렇게 물었다.

“파리에 가서 박물관이랑 에펠탑도 봤어?”

나는 북한도 무서워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중2 아들을 둔 엄마다. 그리고 그 무서운 아들은 지금 1년의 일정으로 여행 중이다. 물론 학교는 1년 쉰다. 용기 있는 엄마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중2 아들과 매일 부딪혀 가며 살 용기가 없어 적절한 타협을 본 것이다. 아들과 또래의 아이들 열 명은 여행가 부부 선생님과 함께 4월 중국으로 떠나 태국, 라오스, 이집트, 스페인을 거쳐 지금은 프랑스에 있다.

통화를 끊고 얼마 뒤 보게 된 사진에는 허클베리 핀이 살았을 법한 산속 오두막집 한 채가 있다. 아들은 지금 그곳에 머무르고 있단다.

프랑스 아비뇽 근처의 시골 마을, 선생님의 친구 ‘마이트리안’이라는 20대 청년의 나무집 주변에 텐트를 치고 아이들은 강가에서 다이빙을 하면서 오카리나를 불면서 산딸기를 따면서 마이트리안의 엄마한테 요리를 배워가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가는 곳마다 우리나라 전통 북 공연을 한다. 여행 전 가장 중요하게 배운 기술이다. 1년치 배낭에 북과 자기 악기 하나씩을 더 챙겨갔다. 오카리나, 플루트, 심지어 기타나 키보드를 챙겨간 녀석들도 있었다.

지인의 집에 머물렀을 때는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 작은 마을잔치를 벌이는데, 그때는 북 공연뿐만 아니라 악기들을 총 동원해 연주도 하고 합창도 한다. 이번 프랑스에서는 마이트리안 엄마의 지휘 아래 새로운 노래 몇 곡을 배워 연주했고 이웃집 아저씨가 즉석에서 키보드 연주도 해주시는 즐거운 파티가 펼쳐졌다고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파리, 박물관, 에펠탑 타령이나 하고 있었으니.

프랑스에 가면 박물관 산책을 해야 하고, 스페인에 가면 산티아고 길을 걸어야 하며, 이집트에 가서는 사막 여행을 해야 한다는 건 편견일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선생님에겐 프랑스와 스페인과 이집트가 중요한 게 아니었으며 그 지점을 이미 넘어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건 그곳에 있는 즐거움을 찾아내서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지구 어디에서건 친구를 사귀고 축제를 만드는 놀라운 기술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기특한 녀석들∼. 아, 이 무식한 엄마라니∼.

김용신(C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