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혜훈 (8) 남편의 변화… 마음의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다

입력 2013-09-10 17:27


남편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다는 믿음의 고백을 받아낸 후 친정의 결혼 승낙을 받기는 했지만 왠지 그 고백이 공허한 것 같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당시 우리가 다니던 교회는 오순절 계통이라 부흥집회가 잦았다. 미국 도심에서는 새벽까지 찬양하고 통성기도를 하는 한국형 대형집회는 상상도 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외로 나가 사막과 다름없는 황무지 한가운데 대형 천막을 치고 집회를 했다. 이런 곳에서는 낮에 기온이 45도 이상 올라가기 일쑤였다. 가만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는 날씨에 대형 천막 안에 수천 명이 빼곡히 앉아 하루 종일 집회를 하면 웬만큼 믿음이 강한 사람도 견디기 힘들었다. 하나님을 영접한 지 얼마 안 되는 후배들이 선배인 나에게 반강제로 끌려와 괴로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러면 남편은 슬그머니 후배들을 끌고 나가 같이 담배를 피우며 불평불만을 충동질하곤 했다.

남편은 예배나 성경공부에 어김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뒤로 기대고 불량하게 앉는다든지, 비스듬하게 다리를 꼬고 앉는다든지 했다. 목사님은 보지 않고 성경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말씀은 듣지 않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어떤 때는 “바울이 아덴에서 고린도까지 그 시절 범선을 타고 갔을 텐데 어떻게 그것밖에 안 걸려? 거기는 무역풍 지대 아냐?”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것 맞아?” 하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따지고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을 쫓아 주세요, 아무리 강력한 악한 영도 뚫을 수 없는 성령의 캡슐을 씌워 주세요.” 정말 신기하게도 이렇게 기도를 하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문제점을 콕콕 짚어대던 쪽지를 더 이상 들이밀지 않았다.

이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기도하던 어느 날 QT 중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를 묵상하다 입술의 고백이 갖고 있는 신비한 힘에 생각이 미쳤다. 문득 남편의 신앙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성령께서 주신 지혜라고 믿는다.

‘이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꾸 믿음을 선포하게 만들자. 그러려면 작은 성경공부모임에서라도 자꾸 말씀을 전하게 만들자. 우리 집에서 성경공부를 하면 집주인이니까, 후배들을 불러 모으면 자기는 선배니까 예배를 인도할 수밖에 없겠지.’

주변의 싱글 후배들에게 주말에 한국음식을 해준다는 핑계로 집에 놀러오라고 불러 간단히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형식으로 시작했다. 아무리 짧은 말씀이라도 준비하게 되고 본인 입으로 말씀을 선포하다 보니 그 말씀에 능력이 있어서 말씀을 시인하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을 발했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 속에서 남편의 믿음은 날마다 자랐다. ‘저의 믿음의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해주세요’라는 기도에 하나님은 신실하게 응답해 주셨다. 그 좋아하던 담배도 딱 끊었다.

남편은 영국에 갔을 때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국에 들어와서는 연세대에서 믿음의 제자들을 키우는 일에 진력했다. 남편이 게임이론에 대한 첫 전공서적을 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사실상 수학책과 다름없는 이 책의 각 편 첫머리 한 페이지 전체를 성경말씀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제 내 믿음의 부족함을 늘 일깨워 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