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호 아저씨’
입력 2013-09-10 17:39
사이공은 1950년부터 1975년 통일 때까지 남부 베트남의 수도였다. 1976년 호찌민으로 개명됐다. 호찌민(胡志明) 전 국가주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호찌민은 ‘깨우치는 자’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응우옌신꿍이다. 프랑스 식민 지배 시대인 1890년 5월 19일 베트남 북중부 지방의 응에안 성 호앙쭈에서 태어난 호찌민은 유교적 교양을 쌓은 인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베트남 독립을 설계하고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민족 지도자였다. 1945년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총리와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호찌민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최종 승리해 프랑스군을 몰아냈지만 미국, 소련 등의 가담으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면서 북베트남의 최고 지휘관으로서 전쟁을 지속했다. 그러다 1969년 9월 2일 79세 때 갑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웅장한 장례식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화장해 북부·중부·남부에 뿌려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으나, 그의 시신은 영구 보존 처리돼 수도 하노이 시내 중심광장의 거대한 묘에 안장됐다. 이번에 국빈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헌화·묵념한 곳이다.
호찌민은 국부(國父)로 베트남 국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의 업적뿐 아니라 검소함과 청렴함 때문이다. 직접 자동차 타이어를 잘라 만든 슬리퍼를 신고 다녔으며, 밥에다 돼지고기 볶은 것을 얹은 도시락을 싸갖고 지방 순시를 다닐 정도였다. 프랑스 총독 관저에 입주하지 않고 관리인들이 묵던 오두막에 살았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호찌민은 유산으로 옷 몇 벌, 지팡이 등을 남겼을 뿐이다. 청렴한 생활에다 인자함에 끌려 베트남 사람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호찌민을 ‘호 아저씨’(Bac Ho·伯胡)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비리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16년여 동안 버티기로 일관하던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10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모두 납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검찰의 수사 압박에 마지못해 역사와 국민 앞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미납 추징금 230억여원을 완납했다.
뒤늦게나마 추징금을 모두 환수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호 아저씨’처럼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지는 못할지언정 지탄을 받는 지도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