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진보, 너는 죽었다

입력 2013-09-10 17:40


“짝퉁 진보에 희롱 당한 채 우리 사회가 크게 흔들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대가(大家)가 없는 시대다. 사회가 극도로 세분화되고 파편화되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넘치지만 전체를 관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큰 이론은 좀체 나오지 않는다. 중원은 무주공산이다.

사회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사상과 과학, 인간과 사회, 철학과 역사를 통합적으로 거론하는 이는 거의 없다. 대가의 탄생은 지난 세기부터 멈춘 듯하다. 경제학의 경우 1929년 세계대공황의 해법을 내놨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꼽을 수도 있겠지만 그의 주장은 경제학에서 멈춰 있다는 점에서 대가로 꼽기엔 한계가 있다.

반면 18세기 인물인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많이 알려졌는데 그의 주장은 경제학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시민사회의 탄생과 그 배경에 대한 분석가로도 유명하다. 그를 시민사회의 첫 번째 과학자로 부르는 까닭이다.

비슷한 경우가 19세기 인물인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다. 베버는 지난 세기 초까지 생존했었음을 감안할 때 대가의 마지막 지존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생리를 규명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수많은 저작 속에서 철학과 역사와 혁명을 말했다. 베버의 대표적 저작인 ‘경제와 사회’는 비교문명사적 시각에서 인류의 역사를 다뤘으며 서구 근대를 ‘합리성’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했다.

마르크스가 종교를 상부구조에 포함시키고 상부구조는 결국 하부구조인 경제에 의해서 규정될 수밖에 없다는 유물론을 편 반면 베버는 근대의 탄생을 ‘세상을 주술로부터 해방시킨 합리성’에서 찾아야 한다면서 정신을 강조했다. 이후 마르크스와 베버는 모든 사회과학자들을 자극했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마르크스의 위세는 조금 처진 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지난 세기 사회과학계는 ‘마르크스와 베버’ ‘마르크스냐 베버냐’는 논쟁으로 점철됐었다. 진보를 꿈꾸는 이들은 마르크스에 경도했고, 근대의 합리성을 추종하며 시민사회를 지향하는 이들은 베버를 따랐다.

이 두 거장을 단순히 진보와 보수로 나누기는 어렵지만 ‘마르크스와 베버’ 논쟁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논리구조로서 충분히 기능했다. 사실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 규정이 쉽지 않다. 철학적으로는 평등과 자유가 상충되는 상황에서 평등을 중시하면 진보라고 하겠으나 경제학적으로는 시장보다 정부를 더 강조하는 것을 진보라고 부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흐름이 뿌리내리고 있지만 이를 두고 세계가 진보주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냐 베버냐’를 두고 다퉜던 사회과학계의 엄연한 역사와 그 영향은 사회의 균형과 바람직한 사회의 나아갈 바를 고민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든 논의와 주장은 이제 과거사로서만 존재한다. 이를 두고 집단지성의 시대가 열렸다고 논평하는 이도 있으나 문제는 최근 우리 사회의 경우 집단지성조차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석기 사태를 통해서 이른바 진보가 속절없이, 그것도 급격히 스러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짝퉁 진보가 건강한 진보를 가로막았던,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결과다.

이석기의 반국가적 행보에 대해서는 귀한 지면을 할애할 가치도 느끼지 않지만 짝퉁 진보에 희롱당한 채 우리 사회의 진보가 흔들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보 없는 보수는 무기력증에 빠지기 쉽고 종국에는 끼리끼리의 탐욕으로 자정기능을 상실한 채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정치에서 여당과 야당의 상호관계가 그러하듯 한 사회도 보수와 진보가 건재할 때 바람직한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국정원의 이석기 수사에 대해 문제 제기라도 할라치면 “쟤 종북 아니야? 조심 해야겠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한다. 획일주의가 난무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죽어가는 진보, 짝퉁 진보가 아닌 진짜 진보를 위해 고민해야 할 때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