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슬림은 꾸란의 이싸를 예수로 말하는가?
입력 2013-09-10 17:35 수정 2013-09-10 22:07
아랍의 종교/공일주 지음/세창출판사
10여년 전부터 한국 사회 안에는 ‘하나의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존재했다. 16억 이슬람교도가 단일 공동체를 이루고 이들 모두 꾸란을 읽고 실천한다거나, ‘이싸’와 ‘예수’는 같다 등의 얘기 말이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7세기 언어로 된 꾸란을 읽는 무슬림은 좀처럼 구경할 수 없고 하루에 5번씩 기도하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공동체라면서 툭하면 수니파와 시아파가 대립하고 강경파는 온건파를 ‘세속주의자’라고 비난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슬람은 국가마다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한국인과 아랍인, 서구인의 시각과 관점에 따라 이슬람 이해도 다른 것이다. 도대체 아랍 종교, 이슬람의 실제는 무엇인가.
우선 아랍은 아라비아반도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20여개의 국가가 속해 있고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은 아랍인 중 93%에 해당한다. 나머지 7% 아랍인은 기독교, 드루즈, 바하이, 유대교를 믿는다. 기독교 종파만 하더라도 네스토리아, 동양 앗시리아, 말키, 롬, 야곱, 수르얀, 콥트, 아르메니아, 동방가톨릭, 마론, 라틴, 개신교 등 12개가 존재한다.
신의 이름을 가리키는 아랍어 ‘알라’는 이슬람교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사용했다. 하지만 7세기 이슬람교가 아랍에서 시작하면서 ‘알라’는 꾸란과 무슬림들이 믿는 신의 명칭이 됐다. 아랍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인 모두 ‘알라’를 그들 신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믿기 때문에 이슬람의 단일신론과는 다르다.
이슬람의 이싸와 성경의 예수 역시 차이가 있다. 무슬림들은 꾸란의 이싸와 성경의 예수는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꾸란에 나오는 ‘알마시흐 이싸 븐 마르얌’은 그리스도를 뜻하는 메시아가 아니다. 꾸란의 이싸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부활하지도 않았으며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행적과 다르다. 꾸란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중보자가 된다는 언급이 없다. 이싸는 신성을 갖지 않고 오직 인성만 갖는다고 보는 게 이슬람 신학이다.
그러면 왜 무슬림들은 꾸란의 이싸를 예수로 말하는가. 첫째는 꾸란과 성경의 예수가 같다고 함으로써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을 전하려는 것이며 둘째는 성경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왜곡됐기 때문에 꾸란의 이싸가 정설이라는 주장이다.
이슬람교에도 종말론이 존재한다. 최후의 날이 많이 강조되는데 ‘그날’에는 나팔이 울리면서 하늘이 찢어지고 죽은 자들이 살아나 심판을 받는다. 매일 한 사람씩 선행과 악행이 드러나고 심판은 5만년간 이어진다. 이슬람의 종말론은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마치 기독교 종말론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듯 말이다. 이슬람 종말론 중에는 이싸가 예루살렘에 나타나 적예언자를 무찌른다는 장면이 나온다. 일부 무슬림들은 그 적예언자를 유대인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시온주의자로, 이슬람의 적으로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도 시온주의자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독교 종말론 중의 하나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신봉자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다시 세우려고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하도록 하면서 무슬림과 적대적 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아랍 기독교인 대부분은 세대주의 대신 무천년설을 따르기 때문에 시온주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정정한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에서 이스라엘 역할을 제외시킨다.
오늘날 아랍 이슬람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 간 양극화가 첨예하다. 또 무슬림끼리도 꾸란과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 해석이 달라 혼란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의 본 모습을 파악하기에 최적의 시기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슬람은 여러 시기마다 독특한 색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34년간 아랍학과 이슬람학을 연구해 왔다. 책을 위해 아랍의 주요 대학 교수부터 출판사 편집장, 신문사 정치부장 등을 만났고 무슬림형제단 훈련부장까지 면담하면서 현대 아랍과 이슬람을 탐구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