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여제 스포츠클라이밍 김자인 선수
스포츠클라이밍(인공 암벽)의 김자인(25) 선수도 피겨의 김연아 선수처럼 ‘여제(女帝)’로 등극돼 있다. 스포츠클라이밍 리드 부문에서 2010년, 2012년에 이어 올해도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서면서 세계를 호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빌더링(빌딩과 볼더링의 합성어·빌딩 벽을 등반하는 것)을 통해 마련한 기부금을 소외계층에 전달한 게 알려지면서 ‘개념 스포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김 선수가 대회 참가를 위해 유럽으로 출국하기 이틀 전인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더 자스 클라이밍 짐’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출국 후 지난 7∼8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아르코 록마스터 대회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으로 독일, 벨기에, 러시아에서 열리는 3개 대회에 더 참가한 뒤 10월 초 귀국할 예정이다.
만난 사람=남호철 논설위원
-지난 7월 부산에서 기부를 위한 빌더링을 했는데.
“저의 작은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었다는 게 제일 뜻 깊었어요. 항상 암장에서 운동하다가 색다른 경험이잖아요. 과거에도 서울에서 두 번 정도 빌더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알고 보니 10m 올라갈 때마다 100만원씩 모두 1280만원의 기부금을 조성해 부산의 아동복지시설에 기탁하는 거였어요. 그 빌딩이 28층으로 128m였어요. 체력적으로 어려움도 있었지만 반드시 완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어떤 곳은 발을 높이 들어올려 걸고 지나야 하고 또 다른 곳은 손을 빈 공간에 넣어 지지력을 확보하는 재밍을 해야 하는 곳도 많아 쉽지 않았지요. 하지만 30여분 만에 빌딩을 다 오르고 완등 깃발을 흔들 때는 뿌듯했어요. 앞으로도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스포츠클라이밍은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하는지.
“좋은 점은 많이 있겠지만 신체적으로는 전신 근력 운동에 좋아요. 헬스를 하면서 키우는 큰 근육보다는 미세한 근육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예쁜 근육을 만드는 데 제격이죠. 심리적으로도 클라이밍을 하다 보면 집중하고 몰입하게 됨으로써 일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목표로 했던 코스를 완등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나 성취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입문하게 된 동기는.
“가족들의 영향이 제일 컸어요. 산악회에서 만난 부모님과 오빠 2명 모두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죠. 아주 어렸을 때부터 클라이밍하는 모습을 봐 오다가 2000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오빠들과 함께하니까 서로 힘든 부분을 잘 알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죠. 가족 모두 클라이밍을 하다 보니 대화도 자주 하게 되고 서로 부족한 부분도 채워줄 수 있어요. 이름을 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자’는 자일(로프)에서, ‘인’은 인수봉에서 따서 붙였대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고등학교 2학년 때쯤 경기도 일산에서 가족끼리 외식하면서 좀 많이 먹었어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유로에서 내려 10㎞를 걸어온 적도 있었어요. 체중 조절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두면 안 되겠는 거예요. 차에서 내린다니까 가족들이 다 말렸는데 울면서 내려 달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
-교생실습 때는 어땠나요.
“2011년 한양공고에 갔었는데 학생들이 신문에서 봤다며 사인도 많이 받아갔어요. 그때 사인을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웃음). 클라이밍 선수면 악력이 엄청 셀 거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이 팔씨름해보자고 많이 했어요. 그때 근육이 다친 적이 있어서 이후에는 절대 팔씨름 안 해요(웃음).”
-중력을 거스르는 운동이다. 식단 조절은.
“항상 41∼42㎏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몸이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특히 쇠고기 등 고기류를. 경기가 많은 시즌에는 조절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식탐도 많이 늘어요. 그래서 하루 한 끼 먹는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침에 점심 겸해서 고기를 구워 든든히 먹고 운동하면서 배고플 때 사과, 고구마 등을 조금씩 먹어요. 시간만 나면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검색하는 게 취미예요.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꼭 찾아가야지 마음먹기도 해요. 한창 클 때는 체중 유지가 참 힘들었지만 요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유지하는 편이에요.”
-생각보다 체구가 상당히 작은데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는 데 제약이 많은지.
“코스 난이도가 높을수록 크고 멀리 뻗어야 하는 동작이 많아요. 키가 153㎝로 다른 선수보다 작은 편이라 이런 동작들을 소화하기에 부담이 없지 않죠. 과거에는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더 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유연성으로 단점을 극복하고 있어요.”
-우승을 손에 꼽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이 했는데 특별히 기억나는 대회가 있다면.
“최근에는 지난 7월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난 4월에 시즌 시작하자마자 무릎 부상으로 대회에 못 나갔어요.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계속 병원 다니며 재활치료하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어요. 어느 정도 회복 후 참석한 첫 대회에서 기대도 안 했는데 결승에서 혼자 완등을 하며 우승을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결승에 진출한 것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동안 무릎 부상 때문에 고생했던 것이 한순간에 씻겨나갔죠.”
-부상은 어떻게 생겼으며 회복은 다 됐는지.
“지난 4월 리드가 아닌 볼더링 월드컵에서 예선전 4번째 문제를 쉽게 한번에 완등하고 평소랑 다름없이 매트 위에 착지했는데 오른쪽 무릎이 안쪽으로 꺾이면서 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이상이 생겼다 싶었지만 경기를 계속해 준결승에 올라갔는데 결국 포기했어요. 준비를 많이 해서 자신감도 있었는데 아쉬웠죠. 귀국 후 병원에 가니까 십자인대와 외측인대가 파열됐고 뼈에도 골절이 조금 있다고 하더군요. 아직 다친 쪽 근육이 왼쪽 다리에 비해서는 좀 약한 상태여서 볼더링 할 때 착지하는 데 심리적 부담이 좀 있어요.”
-슬럼프가 있었다면.
“지난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담감이 커진 때문이죠. 특히 대회 성적이 마음먹은 대로 안 나오게 되자 최고조로 느낀 것 같아요. 클라이밍을 재미있게 즐기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경기 결과만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대회 나가는 게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떻게 극복했는지.
“2012런던올림픽이 열리던 시기였는데 역도 장미란 선수의 경기를 보고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장 선수가 4위였지만 자신의 훈련에 만족하고 바벨을 어루만지며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제 마음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매순간 충실하게 운동하고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대해서 절대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면서 결과도 좋게 나왔어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선수는.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특히 유럽 선수들이 상위권에 있어요. 슬로베니아의 미나 마르코비치 선수와 경쟁을 많이 해요. 지난해 시즌 랭킹 1위를 한 선수죠. 저는 2위였고요. 그렇다고 해서 꼭 이 선수를 이겨야 하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한 코스 완등을 위해서 같이 등반하는 동반자라고 여겨요. 경기 때마다 만나면 서로 인사도 나누고 어떻게 암벽을 오를지 상의도 해요. 무엇보다 완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단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해요.”
-선수생활 하면서 바꾸고 싶은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도 클라이밍이 어느 정도 알려지고 마니아도 많아졌는데 그에 비해 선수층이 얇고 선수에 대한 지원이 많지 않은 편이에요. 국가대표팀이 없다는 게 제일 아쉬워요. 전국체전 정식 종목에도 들어갔지만 정식 팀이 없으니 세계 대회에 대부분 자비를 들여 출전할 수밖에 없어요. 클라이밍이 2020년 올림픽 후보 종목에 있었는데 탈락되면서 대표팀은 더욱 멀어진 거 같아 씁쓸해요.”
-대학원에 다니던데 선수생활과 병행하기에 힘든 점은 없나요.
“스포츠 심리학 전공으로 석사 3학기 다니고 있어요. 선수생활을 하다 보니까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이 가더군요. 대학교 다닐 때도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하지만 아무래도 운동이랑 병행하다 보니까 힘들기도 하고 부담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선수생활을 어느 정도 하고 난 뒤 대학원을 마칠까 생각해 지난해 한 학기 휴학했어요. 하지만 ‘내 앞에 주어진 것에 충실하자’는 생각에 복학하게 됐어요. 그렇게 하면 미래에 준비된 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쉽지는 않지만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선수생활은 언제까지 할 계획인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2020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정식 종목에 포함되지 않는 바람에 그보다 일찍 그만둘 수도 있어요. 선수생활을 그만두더라도 클라이밍은 계속 할 거예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대학원 공부를 바탕으로 후진 양성을 위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어요.”
-태어난 곳이 브라질이던데.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이민을 갔어요. 5세 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브라질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클라이밍에 관심을 두고 하고 싶어 하지만 모험스포츠라고 생각해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아요. 해보면 크게 어렵지 않고 주변에 클라이밍 할 수 있는 장소도 많이 생겨서 여건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선입견을 버리고 헬스장 간다는 생각으로 도전해 보시면 좋겠어요.”
■스포츠클라이밍은…
합판이나 건물 벽면에 손으로 잡거나 발로 디딜 수 있는 홀드(인공 손잡이)를 붙여서 만든 인공 암벽을 오르는 스포츠다. 바닥이 고무창으로 된 암벽화와 안전벨트, 로프(자일)를 갖추면 된다. 필요에 따라 초크(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손에 바르는 탄산마그네슘 가루)나 클라이밍 테이프(손가락 관절 부상과 찰과상을 방지하는 반창고)를 사용한다.
건물 내부나 외벽에 높이 15m 내외, 폭 4m 이상의 구조물을 만들어 경기를 한다. 리드(난이도), 볼더링, 스피드(속도) 3개의 개별 종목이 있다. 리드는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로프를 이용해 안전을 확보하며 15m 내외의 루트를 정해진 시간(8분) 안에 누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지를 겨룬다. 스피드는 15m 높이의 벽을 빠르게 오르는 속도 경기다. 볼더링은 로프 없이 5m 정도의 벽 4∼5개를 정해진 시간(5분) 내에 누가 더 많이 완등(루트의 끝까지 도달하는 것)하는지를 겨루는 종목이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움직임이나 쓰는 근육, 근지구력 등이 판이하다. 리드가 마라톤이라면 볼더링은 단거리인 셈이다. 동시 석권은 힘들어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한 종목에 집중한다.
■김자인 선수는…
김자인 선수는 주 종목이 리드지만 볼더링 부문에서도 세계 랭킹 9위에 오를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 현재 리드 부문 세계 랭킹 1위인 김 선수는 지난 7월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클라이밍 월드컵에서 1위를 하는 등 2010년부터 지금까지 리드 부문에서 1위를 10차례나 했다.
△1988년 브라질 출생 △고려대 체육교육과 졸 △고려대 대학원 재학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소속 △IFSC 주관 ‘아르코 락 레전드 2011 라스포르티바상’ 후보(2011) △여성가족부 사이버멘토링 대표 멘토 위촉(2012) △대한산악연맹 선정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 선정(2012)
남호철 논설위원 hcnam@kmib.co.kr
[인人터뷰] “작은 재능으로 이웃돕기… 128m 빌딩 완등 뿌듯했죠”
입력 2013-09-10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