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日 시민단체가 밝혀낸 강제징용자 통장 실체

입력 2013-09-09 18:49

일본 유초(郵貯·우편저축)은행은 지난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조선인 피해자 38명의 우편저금 현황 자료를 요청받고 13명의 우편저금이 있다는 답변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저금을 한 위치가 밝혀지면서 징용노동자들의 근무지와 사망지까지 파악됐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지난 7일 유초은행 후쿠오카 저금사무센터에 징용노동자 명의의 통장 수만 개가 보관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교도통신 보도가 나왔다. 징용노동자들의 우편저금 실체가 점점 명확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과 동아시아의 탄광이나 조선소 등으로 끌려간 징용노동자는 70여만명이다. 일제와 전범기업들은 이들을 돼지우리 같은 숙소에서 재우며 하루에 16∼17시간씩 일을 시켰다. 폭행은 예사였고,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그러면서 이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임금의 일정액을 ‘애국저금’ 명목으로 우편저금 등에 강제로 저축시켰고, 통장도 주지 않았다. 이번에 발견됐다는 수만 개의 통장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들로 추정되고 있다. 징용노동자들이나 유족들에게 마땅히 반환돼야 할 돈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유초은행과 일본 정부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유초은행은 “판독할 수 없는 것들도 있어 아직 정리 중”이라면서 통장 숫자와 잔액 등에 관해 함구했다. 유초은행 감독 관청인 일본금융청 역시 “정리 중”이라며 관련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노동자 문제가 마무리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최고재판소도 징용노동자 피해보상에 관한 개인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판결한 만큼 통장 기록을 공개하고 미지급 임금이 있다면 유족들에게 지급하는 조치를 취하는 게 도리다.

우편저금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데에는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의 힘이 컸다. 이 단체 관계자들은 2011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왕성한 활동을 폈다.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 강제징용자 문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