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뫼비우스’ 논쟁 이제부터다
입력 2013-09-09 18:48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는 개봉 후에도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문제작이다. 개봉 이전 ‘뫼비우스’는 직계 간 성관계 묘사 등으로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국내 개봉이 막힌 셈이다. 이후 문제의 장면을 3분가량 삭제한 뒤에야 ‘청소년 관람불가’로 겨우 구제받아 상영이 가능하게 됐다. 감독은 “불구 영화를 보여드려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불구 영화’도 김기덕 마니아라면 모르지만 일반 영화팬들에게는 너무 불편하다. 우리 사회 금기의 영역을 넘어선 데다 사회적 가치 및 국민 정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물론 해외 평가는 우호적이다.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뫼비우스’는 찬사를 받았다. 유수의 영화지들은 “기존의 관습들을 벗어던진 작품” 등의 평가를 쏟아냈다. “‘피에타’ 때의 평단 호평은 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일각의 지적은 묻혀 버렸다. 지난해 이 영화제에서 ‘피에타’로 최고의 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 감독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실험정신을 높이 산 외국의 시각이 국내에서까지 동일하게 적용되기는 어렵다.
선정·잔혹성 논란 계속될 듯
이미 시사회를 통해 대강의 내용이 알려진 이 작품을 개봉 이틀째인 지난 6일 직접 접해 보니 감내하기 쉽지 않았다. 거세, 폭력, 윤간, 자학, 가학, 근친상간, 자살 등이 시종일관 화면을 장식했다. 욕망과 배설, 그리고 파국적 결말이 이어지는 동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전달기법은 상식으로도, 예술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니아들은 거장의 작품에 대한 몰이해라고 반박하겠지만 일반 상영관에 내걸리려면 사회적 용인의 한도는 어느 정도 지켜져야 한다. ‘안 보면 그만이지’라는 얘기는 영화의 파급력에 비춰볼 때 무책임하다.
폭력과 복수 등이 담겨 있지만 속죄와 구원의 메시지가 깔린 전작 ‘피에타’와도 대비된다. ‘피에타’는 세간의 평가대로 작품성이 뛰어나다. 물질주의, 사회 부조리, 삶의 가치, 가족과 속죄 등 다양한 영화적 가치가 내재돼 있어 짙은 여운까지 남는다. 그러나 ‘뫼비우스’는 온통 리비도뿐인 일종의 변태적 사이코드라마 같다. 한마디 대사 없이 연기력과 영상만으로 러닝타임 1시간30분을 끌고 간 실험적 시도는 평가받을 만하지만.
제한상영관 서둘러 마련해야
‘뫼비우스’의 문제는 선정성보다는 잔혹성에 있다. ‘스킨 마스터베이션’이나 ‘어깨에 칼을 꽂고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장면’ 등 극단적 표현에 대중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폭력성과 모방위험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과 비윤리적 반사회적 표현으로 당초 제한상영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영등위 입장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영등위가 최종 판정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문제가 적지 않다. 향후 비디오물 유통 때문이다. 그게 ‘19금(禁)’으로 돼 있다 하더라도 청소년들의 접근이 어렵지 않아 상당히 우려스럽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달라는 감독이나 영화계의 주문도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면 이번과 같은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처럼 전용극장을 만들면 된다. 선정성 폭력성이 과도해 사회적 가치 등에 위배되는 작품은 엄격하게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내리고 전용극장에서만 상영토록 하는 게 낫다. 그래야 비디오물 제작 유포 등에도 제한을 가할 수 있다. 전용극장 마련이 쉽지 않다면 예술·독립영화 전용관 등 일정한 공간에서 원하는 성인 관객만 만날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를 해야 한다. 작품 개봉 의지가 강했던 김 감독도 대중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이제는 ‘김기덕답다’가 아니라 ‘거장다움’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정태 문화생활부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