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발뺌… “가계빚 증가, 기준금리 인하 탓 아니다”
입력 2013-09-09 18:26 수정 2013-09-09 22:12
한국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한국은행이 발을 빼고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1000조원까지 치솟은 가계부채의 원인 중 하나로 한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꼽히자 이를 금융사와 부동산 투자에 혈안이 된 국민의 책임으로 돌리는 해명 보고서를 만들었다.
한은은 9일 민주당 이낙연 의원실에 제출한 ‘가계부채 증가와 통화정책 간의 관계’ 보고서에서 한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가계부채 증가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언급했다.
한은 통화정책국은 보고서에서 “금융위기 이전에는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통화증가율이 크게 상승하고, 위기 시에는 기준금리를 큰 폭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증가율이 오히려 하락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전에 기준금리를 올릴 때에 돈이 더 많이 풀렸고, 이후 금리를 내려 완화적 태세로 전환했을 때엔 돈이 잘 돌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은은 보고서에서 2002년 3월부터 2008년 3월까지는 기준금리가 내려가도 통화량은 오히려 2.9% 줄었고 이후에도 9.5%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반면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은 국민의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과 금융기관의 외형경쟁으로 돌렸다. 2000년대 이후 주택가격의 빠른 상승과 맞물려 가계들이 주택구입자금의 상당 부분을 부채로 조달했다는 설명이다. 또 금융기관들이 신용위험이 낮고,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산정에 유리한 주택담보대출을 늘리면서 빚이 대거 늘어났다고 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장기적인 통화완화 정책을 펼 경우 부동산 가격상승과 가계부채 증가세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한은의 이번 보고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당수 전문기관도 가계부채 급증세에 대한 한은의 책임을 묻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2월 ‘가계부채 백서’를 통해 “한은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가 지속되면서 시중에 유동성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공급되는 과잉유동성 사태가 초래돼 가계대출이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해 7월 보고서를 통해 “(한은이 금리를 내릴 경우) 대출자들이 부채 부담을 낮게 여겨 위험을 계속 유지하려는 성향이 지속될 수 있다”며 “부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걸림돌로 작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리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했다면 금융위기 이후 대출은 분명 제자리걸음을 했을 것”이라며 “기대인플레이션이 올라간 영향이 금리에도 있는데 이를 간과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