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회장, STX조선해양 대표 사임
입력 2013-09-09 18:17 수정 2013-09-09 22:26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
STX조선해양은 9일 이사회에서 채권단이 추천한 대표이사 후보를 새로운 등기이사로 선임했다. 현 대표이사인 강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그룹 오너까지 오른 40년 샐러리맨 신화가 무너졌다.
강 회장은 이사회에서 “사사로움이 없을 수 없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대승적으로 채권단의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현재 STX중공업 대표이사와 STX엔진 이사회 의장 등 직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채권단은 여기서도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만 63세인 강 회장은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한 뒤 샐러리맨으로 일하다 2001년 자신이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근무하던 쌍용중공업을 인수했다.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살던 집까지 팔았다. 도전은 10년간 계속됐다. 2001년 대동조선(현 STX 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 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현 STX 팬오션)을 차례로 인수하며 STX 그룹을 재계 13위에 올려놨다. 워낙 빠른 속도로 기업 규모가 커지자 업계에서는 그에게 ‘스피드 경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2007년 노르웨이의 크루즈선 제조업체 아커야즈(현 STX 유럽)를 인수했을 때가 STX그룹 사세의 최고점이었다. 크루즈선을 전 세계에 띄운다는 강 회장의 포부와 입지전적 인생 스토리가 회자됐다. STX는 당시 대학생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우수한 인재가 구름처럼 회사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해운에서 일감이 줄어들면서 유동성 위기가 전체 계열사로 번졌다. 매출과 이익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강 회장은 인수·합병으로 출구를 찾으려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시장도 그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현재 ㈜STX를 비롯해 STX조선해양·STX중공업·STX엔진·포스텍은 채권단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율협약을 체결한 상태이고, STX팬오션과 STX건설은 법정관리 중이다.
구조조정 작업 초기만 해도 채권단은 강 회장과 함께 경영을 정상화하려고 했다. 류희경 산업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강 회장의 노하우를 활용하겠다”고 말했었다.
채권단이 불과 4개월 만에 입장을 바꾼 배경에는 자율협약 진행 과정에서 채권단과 강 회장 사이 빚어진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 회장은 STX팬오션 매각자금을 바탕으로 계열사를 회생시킨다는 그림을 그렸으나 산업은행은 이를 거부했다.
STX조선해양 이사회는 등기이사로 박동혁 대우조선해양 부사장과 류정형 STX조선 부사장을 선임했다. 채권단은 지난 5일 박 부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추천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강 회장의 퇴진은 오는 27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