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시장 선거 反푸틴 나발니 ‘패배한 승자’

입력 2013-09-09 18:09

때론 선거에서 져도 승자가 될 수 있다.

8일(현지시간) 치러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집권 여당 후보에 패하긴 했지만 예상 밖 선전을 한 야권 후보 알렉세이 나발니(37). 그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감옥에 있었다. 모스크바 시장 선거 준비를 하던 나발니는 지난 7월 횡령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법원은 “공정한 선거운동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검찰의 요청에 하루 만에 임시 석방했다.

국내외의 비난 여론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당시 크렘린궁은 나발니가 기껏해야 10% 안팎의 득표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선거 패배로 반푸틴 세력의 약화도 기대했다. 하지만 9일 개표 결과 그는 27.3%를 득표, 예상보다 3배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원을 받고도 51.3%를 얻어 겨우 결선 투표를 피한 집권 통합러시아당의 세르게이 소뱌닌 현 모스크바 시장대행에 이어 2위였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나발니”라며 “크렘린궁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고 평했다.

나발니는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면서 “결선 투표 요구가 이행되지 않으면 시민에게 직접 호소해 거리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나발니는 여론조사기관의 출구조사 결과 최대 32%의 표를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나발니 측은 출구조사 결과 소뱌닌이 50%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측됐다고 주장했다. BBC는 “개표 조작에 대한 의심이 확산될 경우 대규모 시위가 재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권 변호사인 나발니는 2011년 총선을 부정 선거로 규정한 야권의 시위를 이끌면서 반정부 운동의 핵심인물로 급부상했다. 비록 선거에서는 패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반정부 투사가 아닌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는 평이다. 나발니는 국영 TV의 뉴스에서는 철저히 배제됐지만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권자들과의 소규모 접촉을 통해 선전을 이끌어 냈다. BBC는 “앞으로 크렘린의 선거 전략에 깊은 고민을 안겼다”고 전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