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혜훈 (7) 美 교회 목사에게 열쇠 빌려 ‘작정 새벽기도’ 시작

입력 2013-09-09 17:46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미국 교회는 아시다시피 새벽기도가 없다. 전 세계에 새벽기도가 있는 곳은 대한민국밖에 없다. 하루의 첫 열매인 새벽을 하나님께 드리고 기도로 하루를 여는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줄 믿는다.

미국 목사님께 새벽기도를 하고 싶으니 교회 열쇠를 빌려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전혀 이해를 못하고 어리둥절해하셨다. 하지만 결국 설득해서 목사님 댁에 가서 열쇠를 받아 교회 문을 열고 혼자 기도하고는 열쇠를 돌려드리는 방식으로 1년 이상 기도했다.

그러던 중 기도모임에서 선배 언니로부터 영문으로 출판된 조용기 목사님의 ‘4차원의 영적세계(The Fourth Dimension)’에 나오는 기도응답의 5단계에 대해 듣게 됐다. 그중 첫 단계인 중립기어(neutral gear) 이야기가 마치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내리 꽂히듯 내 머릿속에 박혔다.

후진기어를 넣으면 아무리 가속 페달을 밟아도 앞으로 가지 않는다. 차가 앞으로 갈지 뒤로 갈지는 기어를 어디에 넣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이 아무리 응답을 주셔도 내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그 응답을 받을 수 없다. 내 마음에 답을 미리 ‘네’나 ‘아니오’로 정해놓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응답하셔도 그 응답을 들을 수 없다. 내 마음을 중립에 두어야 전진이면 전진, 후진이면 후진,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날 이후 나는 ‘이 결혼을 이루어주세요’라는 기도 자체를 싹 접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응답을 주시든 감사함으로 순종하게 해달라고, 마음을 먼저 증립기어에 놓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꼴좋다’며 뒤에서 수군거릴 것 같은 사람들의 비웃음에서 초연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해 송구영신 예배 때는 나 스스로 놀랐다. 나는 해마다 연초가 되면 한 해의 기도제목을 적어서 봉투에 넣어둔다. 1년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연말이 되면 송구영신 예배에 가기 전에 꺼내서 그 기도들이 얼마나 응답받았나 점검해보는 버릇이 있다. 그날도 봉투를 열어 그해 초의 기도제목을 보니 1번부터 6번까지가 온통 결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미 연말에는 내 마음이 확실한 중립기어에 놓여 있었고 내가 이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결혼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은 상태였다.

새벽에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말씀이 한국에서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와서 아버지랑 의논했는데 예식 문제는 너희들이 둘 다 하나님을 믿고 LA에서는 교회에 다니니 LA 교회에서 먼저 목사님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와서는 일반 결혼식장에서 스님들 모시고 결혼식을 해도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변화의 소식을 전하려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도 한국에서 방금 전화를 받았는데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있겠느냐며 결혼을 허락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단순히 결혼 문제가 풀린 것만으로 기뻐하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나 자신 넘어섰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내 마음을 중립기어에 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뻤고 내 믿음이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사실이 기뻤다. 결혼 문제를 통해 나의 신앙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왔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조건적인 관계, 인격적인 관계, 구복적인 것보다 성령의 임재 그 자체를 갈망하는 관계로 점점 변화해가는 전환점이 됐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