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만날 사람] ‘DMZ 평화대장정’ 이끄는 엄홍길 대장

입력 2013-09-09 17:15


“분단 현실 피부로 느껴… 젊은이 보면 한국 미래 밝아”

“8000m 고산 등반에서도 멀쩡했는데 이번 대장정을 하면서 발에 물집이 다 생겼습니다.” 히말라야 고산을 수없이 오르내린 엄홍길(사진) 대장이지만 이번엔 그도 별 수 없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딱딱한 아스팔트 도로에서 대원들은 물론 엄 대장 역시 쓰라린 물집의 고통을 감내하며 걸어야 했다. 살도 3㎏나 빠졌다.

1998년 안나푸르나 등반 중에 다리 부상을 입었던 엄 대장은 지금도 오른발이 온전치 않다. 발목이 굳어 장기간 포장도로를 걷기에 무리가 있지만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10일까지 14박 15일간 ‘DMZ 평화대장정’을 이끌며 강원도 고성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전 일정을 소화했다.

“올해는 한국전 정전 60주년으로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분단국가죠.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과 DMZ를 걸으며 분단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며 안보의식을 고취하고, 또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그 이후를 대비하는 생각을 가져보자는 취지로 휴먼재단에서 기획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능력도 우수하고 잘 훈련된 소수의 대원들과 원정을 다녔던 엄 대장이었기에 병아리와 다름없는 155명의 대학생 대원들을 이끄는 것은 그로서도 새로운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하루는 막영지인 부대까지 4㎞정도 남기고 잠시 휴식 중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펜 굵기 만한 빗줄기가 쏟아지고 돌풍이 몰아쳤습니다. 정면으로 걷기가 어려울 정도의 비를 뚫고 걷다가 ‘저체온증으로 몇 명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비닐하우스가 보이길래 저기에라도 대피해야겠다 마음먹고 달려갔죠. 토마토나 고추 비닐하우스는 낮고 좁아서 이 인원이 다 들어갈 수도 없는데 마침 열려있던 비닐하우스는 내부 고랑이 아주 컸습니다. 대원들이 고랑 사이에서 비닐하우스 온기로 몸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워낙 위기상황 많이 겪어봤던 엄 대장이기에 순간적으로 비닐하우스를 쉼터로 삼는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강하다고 생각했던 엄 대장은 이번 대장정으로 공동체 의식과 인내심을 기르길 바랐다. 막상 대원들과 숙식을 하며 걷다보니 오히려 엄 대장의 인식이 바뀌었다.

“한국의 미래는 밝다고 느꼈습니다. 나약하다 생각했는데 하루 이틀 걷다보니 근성들이 살아나더군요. 평화대장정이 대원 개개인이 갖고 있던 잠재력과 이타심을 스스로 발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엄 대장은 대원들이 군과 병영문화를 이해하고 분단 상황을 피부로 느낀 것도 큰 성과로 꼽았다. 원정기간 동안 군부대 연병장에서 야영을 하고 북한 초소가 보이는 철책선을 따라 걸으며 대원들이 자연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해단식에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대원들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평화통일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글 김 난, 사진 고영준 쿠키뉴스 기자 na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