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희망 우리의 미래] “세속의 길 걷는 한국교회, 반전이 필요”
입력 2013-09-09 17:29 수정 2013-09-09 15:43
국민일보 창간 25주년·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개교 8주년 기념
콘퍼런스 주강사 은준관 박사 인터뷰
“지금 한국교회는 영적 문맹에 처해 있습니다. 교회 건축이나 목회자 자질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 구조의 맨 밑바닥에 문맹이 깔려 있습니다. 믿긴 하는데 뭘 믿는지 모릅니다.”
은준관(79)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이 지난달 27일 경기도 이천시 학교 총장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교회가 신앙의 기초를 잃어버린 채 세속화로 가고 있다”며 “지금은 신자 한 명 한 명을 하나님 앞에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사용한 ‘영적 문맹’이란 50여년 전 미국의 신학자 크래머가 했던 말이다. 당시 미국 개신교 인구는 전 인구의 68%를 차지했다. 성경이 팔리는 숫자도 1년에 1000만권이 넘었다. 하지만 53%의 기독교인이 복음서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크래머는 이를 분석해 미국교회가 영적 문맹에 빠져 있다고 경고했던 것이다.
은 명예총장에 따르면 이 같은 영적 문맹 현상이 한국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추구하기보다는 축복받고 건강이 좋아지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며 “지금은 교회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성도들이 말씀과 함께 생활하는 신앙의 구조로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은 명예총장은 오는 10월 1일 서울 반포동 서초교회(김석년 목사)에서 국민일보 창간 25주년,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개교 8주년 기념 콘퍼런스의 주강사로 나와 ‘세상에 희망을 여는 공동체’를 주제로 강의한다. 그에 따르면 공동체는 이 같은 한국교회의 위기를 해결할 대안이 될 수 있다.
“공동체의 기본은 성도 한 명 한 명이 교회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10명을 100명으로 만드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10명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신앙공동체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지향합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와 그를 통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신자 개인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반추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 안에는 이 같은 기본적 신앙의 차원이 망각돼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은 명예총장은 공동체의 중요 요소의 하나로 ‘역사적 기억’을 꼽았다. 역사적 기억이란 고난 속에서 함께했던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역사적 기억이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출애굽이라는 과거사를 끊임없이 기억하며 오늘에 재연하려고 한다.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역사적 기억이란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용서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구원의 사건이다. 진정한 교회 공동체는 이 구원 사건을 예배 때마다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공동체 신앙은 그냥 공중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섬세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며 “신앙 공동체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역사적 기억을 반추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현재의 삶과 미래를 소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은 명예총장은 정력적으로 강의하며 한국교회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연구해 왔다. 최근 2∼3년 동안 종교사회학자 칼 더들리가 미국교회를 진단하며 내린 ‘교회성장 후기시대(Post Church Growth Period)’가 한국에도 이미 도래했다고 수차례 경고하기도 했다.
“앞으로 10∼15년이 한국교회의 고비가 될 것입니다. 목회 패러다임부터 교회교육, 신앙생활 전반에 걸친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신자 수는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한 희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희망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여전히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발버둥치며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희망입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엔 고난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고난의 신앙이 교회를 살리는 동력이 됩니다.”
그는 한국교회에 남아있는 마지막 ‘그루터기’를 고통과 고난으로 봤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대규모 국가적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세대가 남아 있다는 것, 개인적 고통을 신앙으로 승화시키는 신자들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저 역시 일제와 6·25를 경험하면서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습니다. 젊은 때는 밥을 못 먹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 현실에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 제 신앙의 역사적 기억이 됐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는 것, 그게 감사한 겁니다.”
은 명예총장은 그러나 고난이 오도되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교회는 고난을 극복하는 신앙을 줘야지,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론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고통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을 증언해야 하는데 오히려 축복받고 건강을 얻자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신앙이 고난 탈피용으로 전락했습니다. 최후의 잠재력을 이런 식으로 오도해선 안 됩니다.”
그는 다가오는 콘퍼런스에 대한 기대도 아끼지 않았다. “몰트만 박사의 ‘희망의 신학’은 60년대 미국을 휩쓸던 하나님 죽음의 신학과 세속신학을 반전시켰습니다. 부정을 위한 부정의 신학 풍토에 제동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번 콘퍼런스가 초월적 하나님 신앙 대신 세속적 영성이 판을 치는 시대를 되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천=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은준관 명예총장
1933년 황해도 옹진 출신으로 6·25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하며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다. 감신대를 나와 미국 듀크대(Th.M.), 버클리퍼시픽신대원(Th.D.) 등에서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감신대 교수와 정동제일감리교회 담임목사, 연세대 신과대 교수, TBC성서연구원(구 한국교회교육목회협의회) 원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실천적 교회론’ ‘기독교교육 현장론’ ‘기독교 교육사’ 등이 있으며 북미 기독교교육학회 선정 ‘20세기 기독교교육자’에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