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 황금사자상에 ‘사크로 GRA’

입력 2013-09-08 18:53

이탈리아 지안프란코 로시(49)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크로 GRA’가 7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차지했다.

‘성스러운 도로’라는 뜻의 ‘사크로 GRA’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도시외곽순환도로 GRA 주변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응급구조원, 매춘부, 어부, 공영아파트 세입자 등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정치적인 메시지나 강렬한 전개 없이 순환도로 주변의 극심한 빈곤을 보여주며, 이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고 감성적으로 담았다는 평이다.

베니스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가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것은 이번이 최초다. 다큐멘터리는 올해 처음으로 메인 경쟁부문에 포함됐다. 또 주최국인 이탈리아 영화가 황금사자상으로 결정된 것은 1998년 지아니 아멜리오(68) 감독의 ‘우리가 웃는 법’ 이후 15년 만이다.

작품 촬영을 위해 밴을 타고 3년간 길 위에서 보낸 로시 감독은 수상 직후 “다큐멘터리로 이렇게 중요한 상을 받게 될 줄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수문이 열렸다”는 말로 다큐멘터리의 시대가 왔음을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다음 달 열리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에 ‘성스러운 도로’라는 제목으로 초청됐다.

1964년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나라 에리트레아에서 태어난 로시 감독은 1985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인도 여행 후 제작한 첫 단편 ‘보트맨’(1993)이 선댄스·로카르노·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베니스와의 인연도 깊다. 영화 ‘애프터워드’가 제57회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08년에는 해수면 아래를 촬영한 첫 장편 다큐멘터리 ‘그들만의 세상’이 베니스에서 상영되며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에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배경으로 극악무도한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엘 시카리오: 164호’로 제67회 베니스영화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이번 베니스영화제의 2등상에 해당하는 은사자상(감독상)은 ‘미스 바이올런스’를 연출한 그리스 알렉산드로스 아브라나스(36) 감독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대상은 대만 차이밍량(56) 감독의 ‘교유’가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미스 바이올런스’의 그리스 배우 테미스 파노, 여우주연상은 ‘어 스트리트 인 팔레르모’의 이탈리아 노배우 엘레나 코타(81)가 수상했다.

지난해 이 영화제에서 김기덕(53) 감독의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던 한국영화는 올해는 단 한 편도 경쟁부문에 진출하지 못했다. 김 감독의 ‘뫼비우스’만이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