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안당국이 전하는 ‘이석기 영장심사’… “감청·압수수색 증거로도 충분”

입력 2013-09-09 02:27 수정 2013-09-08 10:38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의 감청과 압수수색을 통해 나온 증거들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각에서 적법성 논란이 제기됐던 지난 5월 RO 회합 녹취록은 주요 변수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녹취록 외에 국정원이 감청과 이메일 압수수색 등으로 수집해온 자료들이 증거로서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는 뜻이다.

◇내란음모 혐의 소명, ‘녹취록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지난 5일 이 의원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오상용 수원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를 소명하는 데 감청 및 압수수색 증거만으로도 충분하며 회합 녹취록은 볼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오 부장판사가 범죄 혐의 소명의 이유에 ‘수집된 증거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을 넣은 것도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공안 당국 관계자는 8일 “RO의 활동은 감청과 이메일 압수수색 등이 진행되면서 전체 그림이 점점 내란음모의 형태를 갖춰갔다”며 “종종 영장을 기각하던 법원도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듯 보였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지난해 RO 핵심 조직원 홍순석·이상호씨 등의 이메일 계정과 공중전화 통화 등을 집중적으로 추적해 미국·중국을 거쳐 북한 인사와 연락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녹취록 외에 국정원이 수집한 증거들이 내란음모 혐의를 밝힐 구체적 수준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국정원은 제보자로부터 RO 조직 전반에 관한 자료 등이 담긴 USB 메모리를 넘겨받고, 이 의원 자택 등에서 ‘지자체에 들어가 공세적 역량배치’ 같은 내용이 담긴 문건 등을 압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핵심 조직원에게서 사제 폭탄 제조법이 저장된 컴퓨터도 압수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혐의를 입증할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이 표현의 강도가 센 녹취록을 공개해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한 뒤 재판이 시작되면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다른 결정적 증거들을 공개하는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북관계 악화된 올 초부터 RO 전면 등장=이 의원의 혐의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들은 올 상반기 수집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 제출된 이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 의원은 지난 3월 15일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자 현 정세를 전쟁 상황 즉 ‘결정적 시기’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전시에 대비한 이 의원의 ‘전쟁 대비 3가지 지침’ 등 구체적 지령이 하달되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로 보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지난해 홍순석·이상호씨 등 RO 조직원들에 대한 감청·압수수색 영장을 주기적으로 청구할 때만 해도 이 의원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며 “올 초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이 의원의 발언과 행동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