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동·서독 지자체 교류 ‘통일 충격’ 완충 역할
입력 2013-09-08 18:13 수정 2013-09-08 15:18
獨 풀뿌리 민주주의 힘
독일 16개 연방주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와 같다. 연방정부와는 별도의 주헌법을 갖고 있고, 입법·행정·사법부의 삼권분립 체제로 운영된다. 주 안의 지방행정도 자치단위별로 크라이스(Kreis·광역단체)와 게마인데(기초단체)가 외교·국방 등을 제외한 전권을 가진다. 이는 독일 헌법(기본법) 28조 2항에서 못 박고 있다.
이 같은 지방분권과 부담을 통해 독일은 통일 이후 서독과 동독 간 정치·경제·사회의 이질(異質) 상태를 그나마 더 큰 비용 없이 메울 수 있었다.
통일 전 서독은 전통적인 분권주의에 입각해 11개의 주로 구성돼 있었다. 각 주는 독자적 선거제도를 통해 의회를 꾸렸고 주총리를 선출했다. 다양성을 토대로 지방자치 형태도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달랐다. 반면 동독은 공산당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였다. 직접 선출 과정을 거쳐 조직된 인민회의나 정부 공직자까지도 당의 노선과 정책을 단순히 집행하는 데 불과했다. 동·서독은 완전히 다른 정치체제와 정당 구조였다.
이런 두 국가의 가치와 구조를 통합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가 있었다. 그 예가 게마인데 간의 파트너 관계다. 자매결연 등을 통해 자유롭게 접촉·교류를 이어와 결과적으로 통일을 위한 기반 조성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다.
동독이 붕괴되기 직전인 1989년 말까지 62개 도시 간 자매결연이 성사됐고, 33개가 추진 중이었다. 특히 85년 에리히 호네커 동독 국가위원장의 고향인 자를란트 주총리가 동베를린을 찾은 일은 큰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동·서독 주민들의 접촉이 잦아졌고, 통일 즈음해 이 통로를 통해 물자 제공이 이뤄졌다. 자연스러운 통일 기반 조성에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재정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불균형도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가장 낮은 단위의 지자체별로 해결했다. 희생이 뒤따르긴 했지만 통일의 충격에 대한 완충장치 역할도 했다.
이처럼 독일은 지역주의의 뿌리인 지방에서부터 모든 게 출발했다. 여기서 ‘지역주의’는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지역색’이나 ‘지역차별’이라는 서로 단절되고 넘어서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연방정부는 지방정치를 수렴하고, 지방자치를 통한 주민의 의사와 이익을 반영시켜 국민·국가의 통합을 이뤘다.
베를린=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