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 패러다임을 바꾸자] (상) 빚더미 교회신축 부메랑

입력 2013-09-08 18:04 수정 2013-09-08 20:49


“건물로 전도…” 무리하게 빚내서 성전 건축 교회 수백곳, 이단·사이비 먹잇감으로 전락

무리한 빚을 내 교회 건축에 나섰다가 어려움에 처하는 교회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이런 실태는 해당 교회 성도들은 물론 한국교회에 큰 부담이 될 뿐 아니라 교회 본연의 사명과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빚더미 교회 건축 과정의 실태, 부작용 등을 통해 한국교회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능성을 짚어본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화곡동 강서로 41길.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2600가구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맞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짓다가 만 8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공사장 한가운데 솟은 타워크레인은 멈춰서 있고, 건물 골조 곳곳엔 벌건 녹물이 번져 있었다. 서울 은성교회(정봉규 목사) 신축 현장이다.

7년 전 주변 아파트단지에 재건축 바람이 불면서 신축에 들어간 교회는 현재 500억원 규모의 빚을 떠안은 채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예기치 않은 변수로 자금줄이 막힌 탓이다. 공사 초기 신축예배당 부지를 담보로 340억원을 빌려 인근 빌딩을 사들인 게 화근이었다. 임시 예배처소 용도로 사들인 빌딩이 주택재건축정비 지역에 포함됐는데, 재건축조합 측과 건물 처분 및 처분액 규모를 두고 법적 소송이 시작된 것.

교회 측과 시공사측 모두 얽히면서 빌딩을 담보로 조달되던 돈줄은 급속도로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달 막아야 하는 은행 이자는 수억원선. 빚이 빚을 부르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지난 6년여 동안 1·2금융권을 통해 교회가 대출한 금액은 총 900억여원. 건축헌금과 교인 집 담보대출 등으로 돌려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신축 예배당 부지까지 경매로 넘어갔다. 교인들은 지금 짓다만 교회 지하 주차장에서 예배를 드린다.

20년 전 지하 개척교회로 시작한 충성교회(윤여풍 목사). 3년 전 판교 신도시에 지상 7층, 지하 5층짜리 대형교회를 지어 예배를 드려왔다. 하지만 부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종교 건물로는 역대 최고가인 526억원에 경매시장에 나왔다가 최근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빚더미’ 교회 건축은 중소형 교회들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강북에서 목회 중인 50대 초반의 H목사. 2년 전 지하 1층 지상 3층 400석의 교회를 신축했다. 하지만 최근 교회 매매사이트에 이 교회를 매물로 내놨다. 교회건축비 30억원 가운데 16억6000만원을 농협에서 대출받았는데, 매달 630만원 정도 되는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 그는 “동네 재개발 계획에 맞춰 성도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신축을 결정했다”면서 “막상 건축을 하고 나서도 100여명 정도 되는 성도 수가 더 이상 늘지 않았고, 일부 성도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와 부랴부랴 매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인터넷에는 ‘기독정보넷’ ‘아멘365’ 등 20개 가까운 교회매매 사이트가 있다. 8일 현재 이들 사이트를 통해 매매·임대 광고를 낸 교회들만 100여곳에 달한다. 일반 공인중개 업체에 내놓은 매물까지 합하면 수백 곳에 달할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심각한 점은 빚더미에 올라 매물로 나온 교회들이 ‘이단·사이비 단체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간 현대종교(소장 탁지원)에 따르면 대표적인 이단 단체인 H교회는 지난해에만 국내 29곳에 예배당을 마련했는데 이들 상당수가 기존교회 건물을 사들인 것이다.

탁 소장은 “무리하게 교회 건축을 진행했다가 빚을 청산하지 못해 경매에 넘어간 기성교회들이 H교회의 주요 타깃”이라며 “어떻게 보면 기성교회가 이단 단체에 포교 거점을 확보해주는데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예배당 용도에 적합한 기성교회의 건물과 성구, 입지까지 고려된 정통교회의 신축 건물 등은 이단·사이비 단체가 포교에 활용하기 좋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일산에 75억원을 들여 교회를 지었다가 재정부담을 이기지 못해 결국 경매로 H교회에 교회를 넘긴 Y목사. 아파트 상가교회를 다시 개척한 그는 “다른 것보다 기도와 피땀으로 건축한 교회가 이단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아직도 마음을 힘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경매정보업체인 부동산태인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종교시설 경매 건수는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월부터 지난 7월말까지 누적된 경매 물건(191건)은 지난해 같은 기간(149건)보다 27% 증가했다. 이들 경매물건 중 80~90% 정도가 교회나 기도원 등 기독교 시설로 추산되고 있는 만큼 교회 부채 문제는 이미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실행위원장인 최호윤 회계사는 “건축하면 교인이 모이고, 교인이 늘면 헌금도 늘어나고, 헌금이 늘어나면 차입금 상환에 문제가 없다는 사고방식이 부채를 과소평가하게 만들었다”면서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박재찬 이사야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