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머리 사정없이 내리치는 상상 초월 퍼포먼스… 베이징서 미리 본 ‘푸에르자 부르타’
입력 2013-09-08 17:44 수정 2013-09-08 15:19
깜깜한 공간에 빼곡히 들어선 500여명의 관객들이 호기심과 기대감, 약간의 두려움 속에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린다. 디제이가 현란한 조명 속에 몽환적인 음악을 틀자, 전 좌석 스탠딩인 공연장은 순식간에 클럽처럼 들썩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디가 무대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 드디어 컨베이어 벨트 위를 달리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5일 밤 중국 베이징 공렌체육관에서 펼쳐진 아르헨티나의 넌버벌 퍼포먼스 ‘푸에르자 부르타(Fuerza Bruta)’ 공연 현장. ‘푸에르자 부르타’는 공연깨나 봤다는 관객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작품. 2002년 내한했던 아르헨티나 퍼포먼스 뮤지컬 ‘델 라 구아다’ 제작진이 만든 새로운 공연이다. 2005년 아르헨티나 초연 후 유럽이나 미국에서 공연을 접한 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내한 공연을 기다렸던 관객들이 꽤 있다.
공연은 새롭고 강렬했다. 전위적이고 창의적이었다. 음악, 춤, 곡예 등이 어우러진 이 공연은 틀을 벗어난 폭 넓은 공간 활용과 자유로운 무대전환이 특히 돋보였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같은 자리에서 계속 걷고 뛰는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반복되는 일상과 스트레스에 갇힌 이 남자, 눈앞에 다가오는 장애물을 있는 그대로 부딪히면서도 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와이어를 매단 남자의 질주는 마치 공중을 나는 듯 박진감이 넘친다.
이어 허물어져가는 구조물 속에서 춤을 추던 배우들이 갑자기 객석으로 내려온다. 이들은 구조물에서 떨어져 나온 스티로폼 판으로 관객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 순간 하얀 종이가 깃털처럼 흩날린다. 당황해 하던 관객들은 이내 공연의 일부가 되어간다.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리듬에 몸을 맡기는 관객들, 이제 더 이상 ‘보는’ 공연이 아니다. 함께 느끼고 즐기는 퍼포먼스가 된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관객 머리 위로 등장한 거대한 투명 수조. 차오르는 물 속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이 등장한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물 속에 있던 예언자들처럼. 이들은 서로 엉겨 춤을 추거나 수조 바닥으로 몸을 던진다. 11m 상공에 있던 투명한 아크릴 판이 서서히 객석 바로 위까지 내려오자 관객들은 손을 뻗어 흔들며 환호했다.
공연을 관통하는 주제는? 없다. 제작자 디키 제임스(48)는 “이 쇼는 머리를 쓰게 만들지 않는다. 70분간 우리는 당신의 몸, 당신의 느낌과 이야기를 하고, 당신은 감정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이라는 뜻. 미국 뉴욕에는 상설공연장이 있을 만큼 인기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디제이의 음악과 배우들의 춤이 2005년 초연 때 머문 듯 낡은 느낌이다. 화려한 볼거리는 ‘엘리자벳’ 같은 대형 뮤지컬에는 따라오지 못한다.
클럽문화에 익숙하고 누구보다 ‘잘 놀 줄 아는’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 공연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공연에 푹 빠질 수 있을까, 아니면 기대보다는 시시하다고 할 것인가. 결코 싸지 않은 티켓, 이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10월 11∼12월 31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대형천막극장 FB빅탑시어터. 출연진 10명, 70분, 15세 이상, 회당 1200명 전석 스탠딩. 9만9000∼22만원.
베이징=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