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人 주식 쓸어담는데… 돈 궁한 개미는 “팔자” 행진

입력 2013-09-08 17:42


외국인이 최근 국내 채권을 팔고 주식을 사들이는 ‘그레이트 로테이션(Great Rotation)’ 패턴을 이어가고 있다. 외국인의 매수세에 힘입어 주가는 상승국면이다. 하지만 개인은 부채 증가 등으로 구매력이 약해지면서 주식을 내던지기에 급급하는 등 시장흐름과 거꾸로 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외국인이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6일까지 11거래일 연속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 행진을 달리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이 기간 외국인은 무려 3조1197억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 금융위기설이 부각된 지난달 21∼22일을 제외하면 외국인은 지난달 13일부터 한 달 가까이 오직 ‘사자’만을 외치고 있다.

외국인들은 대신 같은 기간 채권을 처분하는 등 그레이트 로테이션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레이트 로테이션이란 자본 흐름이 안전 자산인 채권에서 위험 자산인 주식으로 이동하는 상황을 말한다. 외국인은 지난달 23일부터 국내 채권시장에서 3812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특히 원화강세로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떨어졌던 지난 3일에는 5000억원이 넘는 채권이 순매도를 보이기도 했다.

주식시장의 큰손인 외국인이 돌아온 배경은 우선 원화가치 절상에 있다. 원·달러 환율이 1090원대로 내려가면서 채권투자를 통한 환차익을 노리기 힘들어지자 외국인이 주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입장에서 주식 가격이 올라 얻는 이득이 환차익보다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에도 인도·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과 달리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장점이다. 여기에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며 향후 전망도 밝아 외국인의 투자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이런 상황 덕에 외국인이 향후 최대 15조원의 국내 주식을 더 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문정희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을 1100원 정도로 가정하면 15조4000억원가량의 잠재적 외국인 매수물량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는 외국인의 폭발적 투자와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는 외국인투자자와 정반대의 길을 걸으며 11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이 4991억원어치를 사들였던 지난 6일 개인은 2383억원어치 주식을 팔며 차익실현에 집중했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떠나는 게 비단 최근 일만은 아니다. 임형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개인투자자 증시 이탈의 원인과 전망’ 보고서에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시가총액 대비 개인 거래대금이 46%, 보유액이 36% 줄었다”며 “주식형 펀드 설정액도 지난해 92조4000억원에서 지난 7월 말 84조5000억원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을 떠나는 건 경기불황으로 우리 가계에 자금이 그만큼 부족한 탓이다. 주택가격이 떨어지고 가계소득 증가가 정체되면서 가계부채가 지난해 말 기준 959조원에 이르자 주식에서 돈을 회수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임 연구위원은 “위험자산 기피 현상이 이어지고 가구 재무구조 개선에도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개인투자자금이 증시로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