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빨리 팔아 줄테니 광고비 보내라”… 자영업자 1100여명 등친 ‘피싱의 덫’
입력 2013-09-08 17:39
카센터를 운영하던 A씨(55)는 지난 4월 24일 한 부동산 중개업체에서 전화를 받았다. “적절한 가격에 점포를 팔아주겠다. 대신 부동산 매매 전문지 ‘리치라이프’에 광고를 내라”는 평범한 권유전화였다. A씨는 소개받은 신문사에 전화해 12만8000원을 송금했다. 그가 받은 전화가 폭력조직 답십리파를 낀 ‘보이스피싱’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부동산 중개 사무실을 차려놓고 A씨처럼 복비를 아끼려고 인터넷, 생활정보지 등에 점포 매매 광고를 한 영세 자영업자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광고유치 담당자, 신문사 상담 여직원, 점포 매수 희망자, 답사 대행자, 현금 인출책 등 역할을 분담한 치밀한 시나리오도 짰다. A씨처럼 광고비를 송금한 사람은 곧바로 2차, 3차 범행 대상이 됐다.
광고비를 받은 일당은 며칠 후 A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조만간 매수 희망자가 점포로 갈 것”이라며 2차 범행 미끼를 던졌다. 매수 희망자는 일당이 고용한 ‘배우’였다. 그는 A씨에게 “권리금만 보장받으면 바로 계약하겠다”며 준비한 대사를 읊었다. 일당은 A씨에게 “일간지에 공고하면 권리금을 보장하는 제도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 뒤 공고비용으로 192만원을 받아냈다. 하지만 매수 희망자는 며칠 뒤 A씨에게 계약 파기를 통보했다. 이는 다음 범행을 위한 포석이었다.
일당은 “미리 잡아뒀던 담보물을 경매에 넘기면 되니 염려 말라”며 이번에는 경매 신청을 위한 입찰 공고비 280만원을 요구했다. 일당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공탁금, 소송비, 합의금 등 명목으로 A씨에게 돈을 뜯어냈다. A씨는 덫에 빠져 26일 만에 10차례 1억8000만원을 갈취 당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A씨가 팔려던 점포의 시세는 1억200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윤재필)는 영세 자영업자들을 상대로 매매 중개를 가장해 광고비 등을 뜯어낸 보이스피싱 조직 2곳을 적발, 김모(28)씨 등 8명을 구속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답십리파 조직원 고모(29)씨를 불구속기소하고 달아난 3명은 수배했다.
김씨는 동종 사기 범행으로 수감 중일 때 교도소에서 고씨를 만나 범행을 모의했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야 하는 자리는 모두 일당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A4 용지 15장짜리 시나리오별 대응 매뉴얼도 만들었다.
2010년 9월부터 최근까지 영세자영업자 1100여명은 12만원부터 1억8000만원까지 모두 37억여원을 뜯겼다. 일부 피해자들이 충격에 자살을 기도하는 동안 김씨 등은 고급 외제차를 사고 유흥업소에 드나들며 호화생활을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